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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의 사진소묘

[이건행의 사진소묘] 임방울과 크랜베리스의 공통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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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방울과 크랜베리스

한국과 아일랜드의 공통 정서 ‘恨’
 

 

대략 7~8년 전의 일이다. 공중파 방송에서 낯선 록 밴드 공연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듣는 순간 전율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생중계는 곧 끝이 났다. 자막처리를 하지 않아 록 밴드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말이다.
 
​그후 시간이 몇 달 흘렀을 무렵 임방울의 판소리를 들었다. 그 유명한 「쑥대머리」를 듣고 있는데 난데없이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 록 밴드의 노래가 귓가를 때려댔다. 정확히 말한다면 여성 보컬의 독특한 창법이었다.
 
수소문한 끝에 알아낸 록 밴드는 아일랜드의 크랜베리스였다. 1999년 파리 실황공연을 담은 디브이디를 구해서 보았는데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벌건 대낮에도 볼륨을 크게 해놓고 보았을 정도였으니 감동이 어떠했는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보컬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 O`Riordan)의 음색이 마구 가슴을 파고들었다. 록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기타, 베이스, 드럼에서 튕겨져 나오는 소리는 여느 록 음악처럼 신이 났으나 보컬의 음색만은 달랐다.
 
한마디로 한스러웠다. 판소리와 닮은 구석이 많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돌로레스 오리어던의 꺾어지는 창법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녀는 독특한 창법으로 울부짖었다. 마치 판소리의 계면조를 듣는 것 같았다.
 
임방울의「쑥대머리」와 오버랩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끝 부분인 ‘생전사후에 이 원통을 알아 줄 이가 뉘 있더란 말이냐.’와 같은 흐느끼는 계면조를 듣고 나서 크랜베리스의 「promise」와 「zombie」, 「deliah」등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노래와 유사성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물리지 않는 점 또한 엇비슷했다. 쉽게 물렸다면 크랜베리스의 노래를 몇 번 듣고 말았을 것이다. 아마 울부짖음 속에 어떤 격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속에 있는 것을 모두 토해내면서도 일정한 절제가 있는 울부짖음!
 
이때문인지 드라이해져 있을 때 돌로레스 오리어던의 노래를 들으면 감수성이 살아난다. 감상에 빠져 있을 때 들으면 거꾸로 어떤 힘이 생긴다. 그 정확한 이유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판소리를 듣고 났을 때의 느낌을 통해 유추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한(恨)을 토해내고 났을 때 찾아오는 어떤 개운함. 그 느낌 때문에 판소리를 듣고 크랜베리스의 노래를 들었을 것이다. 한을 끄집어내서 펼쳐 보이면 분명 마음은 가벼워지니까.

이건행
한양대 국문학과를 나와 일간지와 시사주간지 등에서 사건, 미술, 증권 담당기자로 일했다. 장편소설 <세상 끝에 선 여자>(임권택 감독의 <창>으로 영화화)를 출간했으며 현재는 시창작에 몰두하면서 분당 서현에서 인문학 카페인 '봄언덕'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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