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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의 사진소묘

[이건행의 사진소묘] 아, 한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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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한창기!
열정의 다른 이름



“아, 주어와 술어사이의 저 아득한 거리!”

소설가 김훈 씨가 소설을 쓰기 전 저널리스트로서 산문을 썼을 때 내뱉었던 탄식(산문집 <선택과 옹호>)이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보통 곤혹이 아닐 것이다. 쓰고 또 쓰는 혹독한 자기연마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글을 제대로 쓰기란 쉽지 않다는 걸 탄식에서 엿볼 수 있다. 물론 이는 단순한 문법상의 문제만을 뜻하지 않는다. 무엇을(내용)과 어떻게(형식)는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오죽 힘든 일이면 한국에서 글을 제대로 쓰는 사람은 세 명 밖에 없다고 어떤 문학평론가가 단언을 했을까? 백낙청, 정과리, 고종석! 나는 이들의 글을 에누리 없이 사랑한다. 신문 지면에서 자주 보게 되는 고종석 씨의 글은 언제 읽어도 군더더기가 없다. 말 하고자 하는 내용을 아주 깔끔한 문장으로 요리해내는 그 솜씨는 난문이 압도하는 속에서 군계일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글 못지않게 사랑하는 글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글이 아니다. 잡지 <뿌리 깊은 나무>에 실렸던 모든 글이 그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 지난 76년 3월에 창간돼 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폐간된 그 유명한 잡지 말이다. 나는 사실 대학생 시절 이 잡지를 읽으면서 나름대로 글쓰기 연습을 했다.

가급적 짧은 문장(주어와 술어사이의 거리는 그만큼 가까워 진 셈이다), 차분하게 정제된 언어, 어떤 것이든 쉽게 풀어낸 문장, 순우리말…. 게다가 이른바 그리드 시스템이라는 편집디자인을 최초로 도입한데다 가로쓰기를 한 뿌리 깊은 나무는 가장 모던하면서도 가장 심플한 최고의 미학이었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서울 도심에서 언제나 흥분된 상태였지만 가끔 이 잡지를 읽으면서 그것을 누그러뜨렸다.

뒤늦게 안 일이지만 뿌리 깊은 나무가 새로운 문장과 가로쓰기, 시각적 편집디자인을 선보인 데에는 발행인 한창기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의 과정을 <특집! 한창기>라는 책이 증명하고 있다. 그는 당대 최고의 글쟁이들 글조차 난도질을 해서 크게 다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뿌리 깊은 나무 식 문체가 개발된 셈이다.

열정, 새로운 것에 대한 갈구, 끊임없는 자기 연마! 이 때문에 한국언론이 뿌리 깊은 나무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는 평가는 어쩌면 작은 훈장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 자체인 문화에 대해 끼친 영향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이건행
한양대 국문학과를 나와 일간지와 시사주간지 등에서 사건, 미술, 증권 담당기자로 일했다. 장편소설 <세상 끝에 선 여자>(임권택 감독의 <창>으로 영화화)를 출간했으며 현재는 시창작에 몰두하면서 분당 서현에서 인문학 카페인 '봄언덕'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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