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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작가

안현곤, 인식적인 풍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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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재는 사고의 지배를 받을까 아니면 경험의 지배를 더 받을까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환경의 지배를 받을까 하는 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성인들의 공통된 관심사였다.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는 인간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지만 어떤 한가지사실만을 가지고 규정짓기 어렵다고들 한다. 그만큼 인간이란 학문적으로도 복잡한 그 무엇을 가지고있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예술로 표현한다면 어떨까.심리학자도, 철학자도 아닌 안현곤이 갖는 문제가 이것이다. 그것은 그가 예술행위를 미적 영역에만 한정하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인 관심의 측면에서 접근하려는 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창작을 하면서 미적 영역을 무시하거나 건너뛸 수는 없지만 더 넓은 지평에서 바라보려는 관점이 사뭇 흥미롭다.


안현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유학시기의 체험과 상관이 있어 보인다. 작가는 8년여 독일에 머물면서 자아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할 기회를 가졌다. 사색을 즐기는 그의 습관이 공교롭게도 철학적이며 인식적인 독일 예술풍토와 맞아떨어져 그의 작품에 밑거름이 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그의 작품을 보면 금세 파악할 수 있다.



얼마 전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집채만한 크기의 작품이었다. 족히 400호는 되어 보이는 그림 중앙에는 사람의 두상이 위치했고 좌우 양쪽으로는 인간의 특성을 나타내는 독일어 낱말들이 깨알같이 새겨져 있었다. 이 작품은 작가는 인체 두상보다는 인간을 지배하는 요인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상의 이미지는 이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으로 각각 좌우로 나누어 바로 그런 상반된 부분들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고 판단을 내리는지 도상화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오른쪽에는 추측, 지성, 인격, 개념, 자아성, 이성, 심사숙고, 의식, 소통, 필연적 결과와 같은 용어가, 그리고 왼쪽에는 열정, 감성, 감각적인, 고독, 감사, 기억, 겸손, 향수, 망각, 상상과 같은 용어가 쓰여져 있었는데 각각의 부분은 맡고 있는 기능도 틀리지만 이를 통해 복잡한 기관의 작용이 인간의 삶을 형성 짓는 조건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나 싶다. 이성/감성이라는 바퀴와 마찬가지로 체험/사유는 인간이라는 마차를 굴리는 바퀴와 같다. "삶의 숨결이 없는 육체는 시체이며, 사유하지 않는 인간정신은 죽은 것"이라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오뉴월 서릿발 같은' 주장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결국은 작가가 말하는 두 요소 안에 인간다움의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가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생각하는 나무도 같은 맥락에 있는 작품이다. 나무형체의 두상에서 위에서 언급한 이성적인 것들과 감성적인 것들이 마치 잘 익은 열매처럼 영글어져 있다. 그에게 사유나 감성은 멈춘 것이 아니라 자라나고 활동하는 것이다. 그림 속에 주렁주렁 맺힌 열매들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많은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지 알 수 있다. 일부는 숨어있고 일부는 밝혀진,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인들을 마치 수학공식 풀듯이 풀어낸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는 또 다른 개념의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즉 자신이 여행했거나 돌아다녔던 곳을 지도로 만든 작품이 그것인데 일종의 자전적인 그림이랄 수 있다. 그는 독일유학시기에 브레멘에서 5년 7개월, 슈투트가르트에서 7개월, 브라운슈바익에서 1년, 프랑크푸르트에서 6개월 각각 머물렀는데 그가 머물렀던 곳을 지도와 연결하여 과거를 추상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에게 지도는 무엇이 소재하고 있는가 살피는 기능적인 용도가 아니라 자신이 지나쳤거나 머물렀던 곳을 기억하고 회상하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런가 하면 아예 지도를 빼고 그가 움직였던 동선을 그려 마치 거미줄처럼 연결시킨 작품도 있고 <길>이란 작품에선 브레멘에서 지내는 6년여 동안 그가 자전거와 더불어 브레멘국립조형예술대학교와 자신의 거처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동선을 연결시킨 드로잉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작가가 그의 방문지나 여행지를 작품화한 이유를 늘 언저리에서 배회하며 살았다. 이렇게 살면 확실한 미래가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태도. 어떤 관점 혹은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행자는 늘 어느 한 곳에 정주할 수 없기 때문에 이방인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른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행자는 어떤 이해관계에 매이거나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기 때문에 홀가분하다. 홀가분하다는 표현이 좀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거류민(居留民)으로서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처한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사심 없이 받아들일 수도 있다.


안현곤이 그림을 통해 말하려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유학시절에는 이방인의 눈으로 보았던 것이 오늘날처럼 풍부한 예술적 동기를 제공할 줄이야... 그러므로 자신의 드로잉 속에는 브레멘을 관통하는 베저강, 뵈트허거리, 구시가지인 슈노어거리, 마르크트광장과 유서깊은 성페트리 대성당, 공예품을 파는 구멍가게 등과 그가 만났던 사람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검은 필선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젊은 날의 추억이 내려앉아 있는 것이다.


그의 작업 중 부유하는 별들>은 앞의 드로잉과 달리 특별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다. 화면에는 검은 원들이 한 화폭에 예닐곱 개 정도 그려져 있다. 작품 타이틀로 짐작하건대 그것은 밤하늘의 별자리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만히 보면 바탕을 먹으로 채색하고 그 위에 수많은 선을 긋고 최종적으로 검은 원을 그려 넣은 것인데 형태 자체에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기보다는 사물에 흐르는 에너지 혹은 속박되지 않는 움직임을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 의하면 작품을 구상할 때 "나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때로는 전혀 실현이 불가능한 작품계획을 만들고 그것으로부터 우연과 유희 그리고 은유를 가미”시킨다고 한다. 미지의 세계를 추리와 상상력을 동원해 가시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랄 수 있다. 그런 별세계는 우주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자신의 의식 속에 정처 없이 부유하는, 임의성과 모호성에 둘러싸인, 그러기에 더욱 시선을 집중시키는 그 무엇을 형상화시켰을 수도 있다.


출품작은 거의가 평면작품이지만 유일한 입체작품으로 (Full)이라 작품이 있다. 이것은 독일 교섭과 모호성에 둘러싸인, 그러기에출품작은 거의가 평면작품이지만 유일한 입체작품으로 <도서관>이란 작품이 있다. 이것은 독일 고서(古書)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다. 그의 유학시절 벼룩시장거리에 즐비한, 해지고 빛바랜 고서들은 한때는 누군가에 의해 소중히 집필되었을 터이지만 이제는 길거리에 방치된 채 또 다른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작가는 고서들을 어떻게 하면 되살릴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나온것이 바로 이 테라코타 작품이다.


전시장 벽면에 설치된 선반 위에 가지런히 정렬된 수백 개의 테라코타 작품은 제목에서 말해주듯 마치 도서관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실물과 똑같은 크기로 제작한 이 오브제들은 작가가 브레멘 시가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고서를 예술가의 입장에서 재맥락화 하였다. 그가 본 책들은 비록 오랜 세월로빛이 바래고 좀이 쓸기는 했으나 여전히 정신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들이다. 저자는 죽고 최초로 이 책을 구입한 사람이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책을 통해 인류는 지식을 배우고 고결한 정신을 계승해왔다.작가는 누군가가 영혼의 진액을 짜내어 집필한 책이 허무하게 거리에 나뒹굴고 있다는 것이 너무 가슴 짠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누군가는 책을 쓰고, 누군가는 읽어보았을 사람들을 환기시켜보고 싶은마음이 굴뚝같았으리라. 실물과 똑같이 만들고 선반 위에 올려놓은 것은 고서가 갖는 의미에 대한 성찰과 연관이 있지 않나 짐작된다.


안현곤은 2006년 여름에 귀국 전까지 독일 헴베르크갤러리, 독일 DKV 레지던스 갤러리, 브란트 크레도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유학생의 신분으로 유수한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다는 것은 그가 현지에서도 충분히 예술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열기를 안현곤은 국내에 돌아와서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샘터갤러리, 성남아트센터, 갤러리포토하우스에서 가진 개인전과 다수의 프로젝트 등 식지 않는 창작열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업은 탄탄한 사고의 집적도 그렇지만 작가는 삶의 잔재들을 조명함으로써 현재의 풍경을 바라보게 한다. 현재는 다른 무엇으로 대체될 수 없는 흔적의 연쇄로 이루어진다. 이미 누군가 먼저 갔던 길에 우리의 발자국을 더하는 것 같지만 느낌도 감회도 의미도 전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소중한 의미가 쌓인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은 개인적 추억이 용해된 '인식적인 풍경화'라고 할만하다. 아련한 사연이 깃든 시간의 주름이 새겨진 그림이다. 공간과 사물이 중심 아니라 시간과 사유가 중심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는 그가 보이지 않는 것 가운데 더 소중한 것을 끄집어내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서성록 (미술평론가,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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