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의 개인전 《존귀하신 물질이여(Alma Redemptoris Mater: Our Material Our Redeemer)》…
‘물질성’을 강조하는 신작 회화와 설치 작품 <아가몬(Agarmon)> 연작을 소개
본문
상히읗은 오는 12월 8일부터 1월 28일까지 작가 추수의 개인전 《존귀하신 물질이여(Alma Redemptoris Mater: Our Material Our Redeemer)》를 개최한다. 추수는 신체와 물질의 견고한 관계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매체 활용을 통한 전방위적 작업을 선보여왔다. 특히 탈신체성이나 젠더플루이드, 포스트 휴머니즘과 같은 급진적 개념을 다루거나 AI와의 협업을 통해 유연한 사고를 끌어내는 등 일종의 이상적이고 조화로운 세계관을 보여준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품 세계에 근간을 이루는 개념인 ‘물질성’을 강조하는 신작 회화와 설치 작품 <아가몬(Agarmon)> 연작을 소개하는 자리이다.
추수의 개인전 전시장 전경(사진=상히읗)
추수의 개인전 전시장 전경(사진=상히읗)
추수는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아기를 담은 영상 작품 <슈뢰딩거의 베이비>(2019)를 시작으로 본인의 오랜 염원인 출산과 임신을 작업의 주요 소재로 삼아왔다. 작가의 염원을 전면에 내세운 <아가몬> 연작을 통해 디지털 세상에서 태어난 존재를 현실 세계로 옮겨옴으로써 디지털과 현실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한다.
인간은 성관계를 통해 오르가즘을 느낀다. 오르가즘, 그 절정의 순간에 발생하는 엔트로피가 수정과 생명의 탄생으로 귀결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작가는 수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임신으로 치환되지 못하는 오늘날의 엔트로피에 주목한다. 추수는 소실되는 엔트로피의 재치환(redirect) 혹은 우회의 가능성에 주목하며 이를 창작 활동의 통로로 삼는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아가몬> 연작은 인간의 오르가즘의 순간에 탄생하는 ‘몬스터’를 표방한다.
본 전시의 제목 《존귀하신 물질이여》는 4대 성모 교송 중 하나인 ‘구세주의 존귀하신 어머니여(Alma Redemptoris Mater)’에 기인한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임신과 출산을 행하는 여성은 마리아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이브는 아담에게 제공된 도움이자 도구였으며, 사도 바울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여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 자리에 ‘성령’이라는 애매모호한 실체를 끼워 넣어 삼위일체를 완성시켰다는 해석도 분분하다. 또한, 기독교의 교리는 마리아에게 섹스와 출산이라는 이미지가 연상되지 않도록 동정녀와 어머니라는 상반된 개념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고취해 왔다.
추수의 작업은 이와 반대로 섹스와 출산을 연결한다. 작가는 오르가즘 순간에 태어난 몬스터인 <아가몬>을통해 그토록 불경 시 여겨진 여성의 성적 욕구와 성스러운 출산의 (떼레야 뗄 수 없는) 묵인적인 관계성을 강조한다. 그동안 가상 세계 및 버츄얼 캐릭터 등 디지털 기반의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온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현실의 물질성을 더욱 강조하는데, 이는 이번 전시 제목에서도 여실히 확인된다. 어머니를 뜻하는 영어 단어 ‘마테르(mater)’가 물질을 뜻하는 라틴어인 ‘마테리아(materia)’의 어원이라는 사실에서 착안하여 존귀하신 ‘어머니’ 대신 ‘물질’로 번역, 물질성과 모성애를 다시 한번 연결한다
한편, 추수의 신작은 기술(technology)의 역사와 그 안에서 여성의 출산과 재생산을 바라보는 관점과도 연결 지어 읽힐 수 있다. 무언가를 담거나, 때로는 비어있음이 그 자체로 기능이 되는 기술들—항아리나 그릇과 같은 컨테이너, 나아가 여성의 자궁—은 찌르거나 부수고, 역동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 기술—대표적으로 창과 총—에 가려져 기술의 역사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특히, 전자의 기술은 여성성으로, 후자의 기술은 남성성으로 위시되며 기술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보다 더 격하시켰다. 그러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일찍이 담는 것(hold)은 그 자체로 능동적(active)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무언가를 담아냄’이란 취하고(take) 또 지키는(keep) 행위를 동시에 실행하는 상태라고 설명하며 그것이 한낱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되려 복합적인 행위라고 보았고, 기술 역사학자 루이스 멈포드는 1930년대에 여성, 그리고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도구나 기술이 기술 역사와 철학에서 쉽게 간과되어 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호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기술과 과학 철학 연구자 조 소피아는 이러한 멈포드의 주장에서 한발 나아가 여성의 자궁을 테크놀로지로 여김으로써 출산과 재생산이 인간의 필수적인 기술성의 핵심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그동안 여성의 자궁을 남성의 씨앗을 운반하는 수동적인 도구나 통로로 여겨왔던 지난한 남성주의적 역사와 기술관에 젠더적 균형을 맞추는 관점이다.
추수는 AI와 같은 첨단 기술의 활용을 구심점으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그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바 있다. 그리고 위의 관점에서 추수의 신작을 바라봤을 때,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또한 새로운 기술의 차용으로 해석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작품들과도 큰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추수가 품은 출산에 대한 염원은 보다 근본적인 기술로의 염원이다. 그리고 이는 작품을 ‘낳는다’는 표현을 즐겨하는 작가의 작품 전반에서 잘 드러난다. 가득 차 있는 컨테이너는 무용하다. 컨테이너 기술의 핵심은 또 다른 무언가를 담기위해 이미 담겨져 있는 것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며, 추수는 끊임없이 작품을 생산하고 낳으면서 이 핵심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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