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리포트: 바우하우스 > 한지수의 도이치 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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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도이치 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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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리포트: 바우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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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시작한 〈봉주르 파리〉의 기록 가운데에는 프랑스 밖에서 마주한 예술의 장면도 있다. 그중 독일에서 만난 전시와 이야기를 새로운 독일 문화예술 코너 〈도이치 쿤스트 (Deutsche Kunst)〉로 옮겨 담는다. 

2026.09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독일 데사우의 바우하우스(Bauhaus)는 일종의 성지처럼 여겨진다. 2019년은 바우하우스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은 해였다. 한국에서 오신 부모님과 함께 베를린을 여행지로 정하고 데사우까지 기차를 타고 향했다. 베를린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지인의 안내를 받아 찾은 바우하우스는 혼자였다면 놓쳤을 이야기들을 하나씩 들으며 둘러볼 수 있어 더욱 특별했다.

돌이켜보면 10년 전 독일 뮌헨을 방문했을 때도 부모님과 인연이 있던 건축가의 설명을 들으며 도시의 건축물을 둘러본 기억이 있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 전문가의 해설은 익숙한 건물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번 데사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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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uhaus, Photo: Han Jisoo   
 

1919년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가 바이마르에서 설립한 바우하우스는 예술과 공예, 기술을 하나의 교육 체계 안에서 통합하고자 했다. 이후 바이마르에서 데사우로, 다시 베를린으로 옮겨갔으며 나치 정권의 압력 속에서 1933년 문을 닫기까지 짧은 역사 속에서 현대 건축과 디자인의 방향을 크게 바꾸었다. 그 영향은 건축에만 머물지 않았다. 가구와 그래픽, 타이포그래피, 금속공예, 직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조형 언어를 만들어냈고, 오늘날 우리가 ‘모던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것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바우하우스의 교육은 단순히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재료의 특성을 이해하고 직접 다루는 공방 교육과 형태에 대한 이론적 탐구를 병행하면서 예술과 기술이 서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창작 과정 안에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실험적인 교육 방식은 훗날 전 세계의 디자인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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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uhaus, Photo: Han Jisoo    


그런데 막상 건물 안에 들어섰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의외로 소박했다. ‘이 건물이 왜 그렇게 유명할까?’ 오늘날 우리의 눈에는 유리창과 흰 벽, 기하학적인 구조와 단순한 형태가 오히려 익숙하다. 특별히 낯설거나 파격적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건물이 지어진 시점이 1920년대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풍경이 달라진다.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해진 건축적 요소들이 당시에는 새로운 시대를 상상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특히 1919년이라는 시점을 생각하면 그 간극이 더욱 선명해진다. 바우하우스가 출범한 바로 그해, 한국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났다. 서로 다른 역사적 조건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던 시기였다. 100년 전 누군가는 예술과 기술, 생활을 하나의 공간 안에서 새롭게 결합하려 했고, 그 시도가 오늘날 우리의 일상적인 공간 감각 가운데 상당 부분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바우하우스를 설명하는 수많은 이론과 역사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연구에 기대기로 하고, 나는 조금 천천히 건물을 둘러보기로 했다. 복도와 계단, 창과 난간, 교실과 작업 공간을 따라 걸으며 당시 이곳을 오갔던 사람들의 흔적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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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uhaus, Photo: Han Jisoo    


바우하우스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건축물만이 아니다. 가구와 조명,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기능과 형태를 함께 고민한 디자인이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의자를 비롯한 가구들은 장식적인 요소를 최소화하면서도 실제 사용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직접 앉아보니 단순한 형태와 달리 의외로 편안했다.아름다움을 위해 기능을 희생하거나, 기능을 위해 미감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를 함께 고민하는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철학을 가장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장식과 색채가 풍부한 디자인에 더 익숙해서인지, 이 절제된 미감이 내 취향과 완전히 맞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바우하우스가 남긴 영향력을 실감하기에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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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uhaus, Photo: Han Jisoo    

교장과 교수들의 사진이 걸린 공간을 지나면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역시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예술가와 건축가, 디자이너와 공예가가 한 공간에서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작업했던 학교였던 것이다. 바우하우스가 단순히 하나의 건축 양식이나 학교 이름으로 남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같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바우하우스가 만들어낸 방대한 기록과 아카이브였다. 건물 하나가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이루어진 교육과 실험, 사람들의 관계와 작업이 축적되면서 하나의 문화적 유산이 되었다. 오늘날 데사우라는 작은 도시가 바우하우스와 함께 기억되는 것도 결국 그 아카이브가 지닌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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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uhaus, Photo: Han Jisoo    


흥미롭게도 바우하우스의 개념을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된 곳은 전시 공간이 아니라 마지막에 들른 기념품 숍이었다. 책과 포스터, 생활용품과 디자인 제품들이 기능성과 조형성을 함께 보여주고 있었다. 하나의 철학이 건축물에만 머물지 않고 일상적인 물건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바우하우스 건물을 나와 조금 걸으니 교수들의 기숙사로 사용되었던 주택들이 나타났다. 이곳에서도 바우하우스의 실험은 이어졌다.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와 넓은 창, 기능을 중심으로 구성된 공간은 맞은편의 전통적인 주택들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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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uhaus, Photo: Han Jisoo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바우하우스 특유의 미감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세련되고 정제된 공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차갑다는 인상도 있었다. 노출된 콘크리트와 단순한 구조가 실내까지 이어지면서 아름답지만 생활의 온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였다. ‘멋진 공간이지만 내가 실제로 살고 싶은 집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벽면에 다양한 색채가 사용된 한 공간은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안락하게 느껴졌다. 같은 모더니즘 건축 안에서도 색과 재료의 선택만으로 공간의 온도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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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uhaus, Photo: Han Jisoo    


지금 우리의 눈에는 익숙하다 못해 때로는 식상하게 느껴지는 형태들이 100년 전에는 얼마나 급진적인 실험이었을까. 그리고 지금 우리가 ‘새롭다’고 부르는 건축과 디자인 역시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일상의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것이다. 오늘의 실험이 내일의 익숙함이 되는 과정은 건축과 디자인의 역사에서 반복되어 왔다. 새로운 시대의 삶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했던 바우하우스의 정신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질문으로 남아 있었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예술 현장의 숨결을 기록하며 언어와 문화 사이의 미묘한 결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현재는 다양한 문화예술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파리의 이야기를 수집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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