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게오르그 콜베 미술관: 토마스 쉬테 > 한지수의 도이치 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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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도이치 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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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게오르그 콜베 미술관: 토마스 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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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시작한 〈봉주르 파리〉의 기록 가운데에는 프랑스 밖에서 마주한 예술의 장면도 있다. 그중 독일에서 만난 전시와 이야기를 새로운 독일 문화예술 코너 〈도이치 쿤스트 (Deutsche Kunst)〉로 옮겨 담는다. 

2026.0

베를린 서쪽,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게오르크 콜베 미술관(Georg Kolbe Museum)은 번잡한 도시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고요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숲과 주택가가 이어지고, 한적한 거리와 낮은 건물 사이로 유럽 특유의 평온한 풍경이 펼쳐진다. 길을 찾지 못해 잠시 헤매던 순간에는 지나가던 독일인에게 도움을 받았고, 미술관에서도 직원이 영어 자료와 특별전 관련 인쇄물을 직접 챙겨주었다. 낯선 도시에서 마주한 작은 친절들은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조금씩 가까운 곳으로 바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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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org Kolbe Museum, Photo: Han Jisoo   


게오르크 콜베 미술관의 중심에는 독일의 근대 조각가 게오르크 콜베(Georg Kolbe)의 작품과 유산이 자리한다. 1950년 콜베의 예술적 유산을 보존하고 후대에 전달하기 위해 설립된 이 미술관은 약 200점의 조각을 비롯해 그의 드로잉과 관련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특히 청동 조각이 컬렉션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에른스트 발라흐(Ernst Barlach), 루돌프 벨링(Rudolf Belling), 헤르만 블루멘탈(Hermann Blumenthal), 에르네스토 데 피오리(Ernesto de Fiori), 아우구스트 가울(August Gaul), 빌헬름 렘브루크(Wilhelm Lehmbruck), 게르하르트 마르크스(Gerhard Marcks), 르네 신테니스(Renée Sintenis) 등 20세기 전반 독일 조각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이곳의 기획전은 콜베와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을 시간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동시에, 동시대 조각의 가능성과 한계를 탐구하는 데 초점을 둔다. 과거의 조각을 보존하는 장소인 동시에 현재의 조각을 질문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게오르크 콜베 미술관의 전시는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 사이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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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org Kolbe Museum, Photo: Han Ji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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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쉬테(Thomas Schütte)는 1954년 독일에서 태어난 쉬테는 조각을 중심으로 드로잉, 회화, 설치, 건축적 작업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인간과 사회, 공간에 대한 탐구를 이어온 작가다.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대표 작가로 참여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2019년에는 파리 조폐국(Monnaie de Paris)에서도 대규모 전시를 선보인 바 있다.

이번 전시에는 2021년 제작된 작품을 포함해 약 30점의 조각과 다수의 종이 작업이 소개됐다. 유기적이고 구상적인 형상에서 공간을 구성하는 작업, 추상적인 형태에 이르기까지 쉬테의 작업은 하나의 양식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미술관은 그의 작업을 문화적·역사적 역학과 담론, 그리고 재현의 방식이 지닌 복잡성을 드러내는 시도로 설명한다. 특히 인간의 신체와 얼굴은 쉬테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모티프다. 그는 서로 다른 재료와 크기, 비례를 실험하고 끊임없이 형태를 조정하면서 익숙한 인간의 형상을 낯선 존재로 다시 만들어낸다.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은 것은 인간의 얼굴과 신체였다. 특히 고통이나 절망을 머금은 듯한 흉상들은 아름답다기보다 불편하고, 때로는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불편함은 작품 앞을 지나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오래 머물게 했다.

조각을 바라보며 특정한 감정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전달된다고 느낀 것은 오랜만이었다. 쉬테의 인물들은 감정을 과장하거나 극적인 동작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과 뒤틀린 형태, 무거운 물질성이 감정의 흔적을 남긴다. 조각에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형태를 통해 인간의 내면에 닿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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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org Kolbe Museum, Photo: Han Jisoo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같은 작가가 전혀 다른 온도의 얼굴을 만들어낸다는 점이었다. 다른 전시장에서는 보다 평온하고 담담한 표정의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격렬한 표정이나 극적인 몸짓 없이도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은 오히려 더 섬세하게 다가왔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관객으로 하여금 그 안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쉬테의 작업을 처음 직접 마주한 자리였지만, 바로 이 절제된 표현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마침 유리창을 통과한 햇빛 한 줄기가 한 작품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차갑고 단단한 조각의 표면에 따뜻한 빛이 머물면서 작품의 분위기 역시 달라졌다. 작품 자체의 형태뿐 아니라 그것이 놓인 공간과 빛, 시간에 따라 조각이 전혀 다른 표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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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org Kolbe Museum, Photo: Han Jisoo  


게오르크 콜베 미술관에서 더욱 특별했던 것은 전시장 바깥이었다. 미술관에는 정원과 카페가 있고, 정원 곳곳에는 조각 작품이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 실내의 흰 벽 안에 고정된 조각과 달리, 정원 속 작품들은 햇빛과 나무, 계절의 변화 속에서 또 다른 생명력을 얻는다. 조각의 움직임이 주변의 풍경과 연결되면서 작품 자체의 동작도 한층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게오르크 콜베는 1928년 베를린-베스텐트의 센스부르거 알레(Sensburger Allee)에 숲을 구입하고 자신의 주거와 작업실을 마련했다. 건축은 바젤 출신의 건축가 에른스트 렌치(Ernst Rentsch, 1876–1952)가 맡았다. 콜베는 작업실과 생활 공간을 자연과 직접 연결했고 정원에는 마돈나 백합, 야생 장미, 등나무 등 자신이 아내를 떠올릴 수 있는 식물들을 심었다고 한다. 

이곳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조각가가 자신의 작업을 연구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하나의 환경이었던 것이다. 작품이 자연 속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빛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조각의 존재감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된 일종의 조각 정원이기도 했다. 그 사실을 알고 다시 정원을 바라보니, 이곳의 조각들이 전시장 안의 독립된 오브제가 아니라 삶과 자연, 공간 속에서 존재하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조각을 둘러싼 환경까지 작품 경험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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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org Kolbe Museum, Photo: Han Jisoo  


전시의 규모가 크거나 작품 수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짧은 동선 안에서도 쉬테의 조각은 충분히 오래 머물게 했다. 특히 인간의 얼굴과 몸이라는 익숙한 대상을 통해 불안과 고통, 평온과 침묵 같은 감정을 끌어내는 방식은 전시장을 나온 뒤에도 여운이 남았다.


미술관을 나서기 전 작은 뮤지엄 숍에 들렀다. ‘숍’이라고 부르기에는 소박한 한 공간이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맞은편 주택가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고요한 겨울 풍경이었다.

베를린에서의 짧은 방문을 돌아보며 좋은 전시는 많은 것을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라, 돌아온 뒤에도 이전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게 만드는 전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토마스 쉬테의 조각을 보고 난 뒤 사람의 얼굴을 바라볼때면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것이 이번 베를린 여행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가장 소중한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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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org Kolbe Museum, Photo: Han Jisoo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예술 현장의 숨결을 기록하며 언어와 문화 사이의 미묘한 결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현재는 다양한 문화예술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파리의 이야기를 수집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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