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가 사라진 것 같은 날에 > 최유림의 그림책 마음 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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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림의 그림책 마음 화실

내 자리가 사라진 것 같은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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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유림 (비작(주) 대표 / 작가, 예술교육콘텐츠 기획자)


오늘의 그림책 : 에즈라 잭 키츠, 『피터의 의자』 (시공주니어)

살다 보면 문득 내 자리가 사라진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분명 오래도록 내가 앉아 있던 자리였는데, 어느 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것만 같습니다. 회사에서는 나보다 늦게 온 사람이 더 많은 주목을 받고, 가족 안에서는 내가 맡아오던 역할이 조금씩 바뀌고, 관계 안에서는 예전만큼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죠.

머리로는 압니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관계의 자리도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을요.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서운함이 조용히 고개를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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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츌처: 
피터의 의자 표지(시공주니어)


“이건 원래 내 자리였는데.”

참 유치해 보이면서도 아픈 마음입니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이런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누군가에게 밀려난 것 같은 마음, 내가 소중히 여기던 것이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을 때의 상실감은 나이를 먹어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에즈라 잭 키츠의 그림책 『피터의 의자』는 바로 그 작고도 깊은 마음을 아주 조용히 들여다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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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츌처: 피터의 의자 표지(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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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츌처: 피터의 의자 표지(시공주니어) 


내 것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 같은 아이

피터에게 여동생 수지가 태어납니다. 집 안에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부모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새로 태어난 동생에게 향합니다. 피터는 그 변화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자신이 아기였을 때 쓰던 물건들이 하나씩 동생의 것이 되어가는 겁니다.

아기 침대도, 요람도, 높은 의자도 모두 분홍색으로 칠해져 수지를 위한 물건이 됩니다. 어른의 눈에는 그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아이가 다 컸으니 아기 물건은 이제 새 아기가 쓰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피터의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물건들은 단순한 가구가 아니었습니다. 피터가 사랑받던 시간의 흔적이었고, 부모의 품 안에 있던 기억이었고, 이 집에서 자신이 가장 작고 소중한 존재였던 시절의 증거였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 물건들이 하나씩 다른 색으로 칠해지고, 다른 아이의 것이 되어갑니다.

피터가 정말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것은 의자 하나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사랑받던 방식, 자신만을 향하던 시선, 이 집 안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던 작고 단단한 자리를 지키고 싶었을 겁니다.


질투는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의 다른 얼굴입니다

우리는 흔히 질투를 부끄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더 많은 관심을 받을 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선택받는 장면을 볼 때, 나보다 늦게 온 사람이 더 환영받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얼른 마음을 숨기려 합니다.

‘내가 왜 이러지?’,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되는데.’, ‘너무 못난 생각이야.’ 하지만 질투의 밑바닥에는 대개 아주 오래된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사랑받고 있나요?”, “내 자리는 아직 남아 있나요?”, “나를 잊어버린 건 아니겠죠?”

피터의 마음도 그랬을 겁니다. 동생이 미워서라기보다, 자신이 밀려난 것 같아 무서웠던 것이죠. 새 아기가 온다는 건 가족에게는 축복이지만, 첫째 아이에게는 세계의 중심이 흔들리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어제까지 나를 향하던 손길과 목소리와 시선이 오늘은 다른 존재에게 향할 때, 아이는 처음으로 사랑이 나누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때때로 상실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피터는 아직 분홍색으로 칠해지지 않은 작은 파란 의자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갑니다. 강아지 윌리와 함께 자기만의 자리를 지키려는 듯이 말입니다. 그 모습은 고집스럽다기보다 애틋합니다. 마치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만큼은 내 거예요.”, “이 자리만큼은 빼앗기고 싶지 않아요.”, “나도 아직 여기 있어요.”


더 이상 앉을 수 없는 의자 앞에서

그런데 그림책은 여기서 아주 조용한 반전을 보여줍니다.

피터는 자신이 지켜내려 했던 그 작은 의자에 앉으려 합니다. 하지만 의자는 이제 피터에게 너무 작습니다. 피터는 더 이상 그 의자에 앉을 수 없습니다. 이 장면이 참 오래 마음을 붙잡습니다.

피터는 그제야 알게 됩니다. 자신이 빼앗겼다고 느낀 그 자리는 사실 이미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자리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요. 의자가 피터를 밀어낸 것이 아니라, 피터가 자란 것입니다. 누군가가 피터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 아니라, 피터의 몸과 마음이 이미 그 작은 자리를 넘어설 만큼 커져 있었던 겁니다.
삶에서도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관계, 어떤 역할, 어떤 시절을 오래 붙잡고 싶어 합니다. 예전에는 분명 나를 안정시켜주던 자리였고, 나를 설명해주던 이름이었고, 내가 사랑받는다고 느끼게 해주던 방식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자리가 불편해집니다. 예전처럼 나를 담아주지 못합니다. 몸을 구겨 넣으면 들어갈 수는 있을지 몰라도, 더 이상 편안하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는 처음엔 상실이라고 느낍니다. 내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밀려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빼앗김이 아니라 성장의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앉을 수 없는 작은 의자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자라났다는 것을요. 그리고 자라난 사람은 언젠가 자신이 앉아 있던 작은 자리를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줄 수 있게 된다는 것을요.


작은 의자를 떠나 더 넓은 자리로

피터는 결국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아빠와 함께 그 작은 의자를 동생을 위해 칠합니다. 이 장면에서 피터는 더 이상 빼앗기는 아이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맞지 않게 된 자리를 스스로 건네주는 아이가 됩니다. 억지로 빼앗기는 것과 스스로 건네주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입니다. 앞의 것은 상처가 되지만, 뒤의 것은 성장의 기억이 됩니다. 피터는 의자를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자리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조금 더 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조용히 인정한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면서 어떤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더 이상 내가 중심이 아닐 때도 있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물려주어야 할 때도 있고, 익숙했던 역할에서 한 걸음 물러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아픈 것은 당연합니다. 오래 앉아 있던 자리에는 언제나 나의 체온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러나 모든 내려놓음이 패배는 아닙니다. 어떤 내려놓음은 내가 더 넓은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전의 나를 담아주던 작은 의자와 작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다음 자리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성장이란 늘 당당하고 멋진 모습으로만 찾아오지 않습니다. 때로는 서운함으로, 질투로, 빼앗긴 것 같은 마음으로 먼저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이런 조용한 문장이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나는 아직 사랑받고 싶다. 나는 아직 내 자리를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제 조금 더 자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마음속에서 오래된 의자 하나를 붙들고 있는 자신을 너무 나무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못나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사랑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제 가만히 물어볼 시간입니다. 이 자리가 정말 지금의 나에게도 맞는 자리인지, 혹시 나는 이미 조금 더 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당신이 빼앗겼다고 느꼈던 그 자리는, 어쩌면 당신이 이미 자라났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자, 이제 마음속에 오래 놓아두었던 작은 의자를 떠올려볼까요?당신이 아직도 붙잡고 있는 그 자리는 무엇인가요?그리고 지금의 당신에게는 어떤 더 넓은 자리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글ㆍ사진_최유림 (비작(주) 대표)
임상미술치료 연구 및 예술교육 기획자.
그림책의 미학적 가치를 심리회복와 결합하여, 어린이와 성인의 마음 성장을 돕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웹: bejak.co.kr / 인스타그램: @i_be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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