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싶어서 나를 바꾸고 싶은 날 > 최유림의 그림책 마음 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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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림의 그림책 마음 화실

사랑받고 싶어서 나를 바꾸고 싶은 날

본문

(글: 최유림 (비작(주) 대표 / 작가, 예술교육콘텐츠 기획자) 



오늘의 그림책 : 레오 리오니, 『알렉산더와 장난감 쥐』 (시공주니어)


사랑받고 싶어서,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이 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어쩐지 부족한 것 같고, 누군가가 좋아할 만한 모습이 되어야만 비로소 받아들여질 것 같은 날 말입니다. 조금 더 다정하게, 조금 더 밝게, 조금 더 매끄럽게.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을 만큼만 나를 드러내고, 기대에 맞는 표정을 짓고, 마음에 들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속에 조용한 질문이 떠오릅니다. 나는 지금 사랑받고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동안만 곁에 머물 수 있는 걸까. 지금의 나는, 나로서 충분한 걸까.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 『알렉산더와 장난감 쥐』는 바로 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진짜 쥐가 장난감 쥐를 부러워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타인을 만족시키려는 마음에서 본연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회복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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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츌처: 『알렉산더와 장난감 쥐』 (시공주니어)  



살아 있는 쥐, 있는 그대로의 나


알렉산더는 진짜 쥐입니다. 살아 움직이고, 먹이를 찾고, 집 안 구석구석을 조심스럽게 지나다니는 작은 생명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알렉산더를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면 비명을 지르고, 빗자루를 들고 쫓아냅니다.


알렉산더는 늘 숨어야 합니다. 발견되는 순간, 그는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라 불편하고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누군가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쫓겨나야 할 존재가 된다는 것은 어린 쥐에게 얼마나 외로운 일이었을까요. 어쩌면 알렉산더의 마음속에는 이런 질문이 자라났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왜 사랑받지 못할까?”


그러던 어느 날, 알렉산더는 윌리라는 장난감 쥐를 만납니다. 윌리는 태엽을 감으면 빙글빙글 움직이는 작은 장난감입니다. 알렉산더와 같은 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윌리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는 윌리를 좋아하고, 안아주고, 곁에 두고 놀아줍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알렉산더의 마음은 복잡했을 겁니다. 자신은 살아 있는 쥐인데도 쫓겨나고, 윌리는 장난감 쥐인데도 사랑받습니다. 같은 쥐의 모습인데, 한쪽은 미움받고 한쪽은 환영받습니다. 알렉산더에게 윌리는 부러움 그 자체였을지도 모릅니다. 나도 저렇게 된다면, 더 이상 숨어 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았겠지요.



장난감 쥐, 타인을 만족시키는 또 다른 나


하지만 윌리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는 단순히 사랑받는 존재만은 아닙니다.


윌리는 누군가를 즐겁게 할 때 사랑받습니다. 태엽을 감으면 움직이고, 아이가 기대하는 만큼 반응하고, 귀엽고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기능할 때 곁에 머물 수 있습니다. 안전해 보이고 사랑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랑은 윌리의 존재 전체를 향한 것이라기보다 윌리가 제공하는 즐거움과 쓰임에 기대어 있습니다.


이 모습은 우리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와 닮아 있습니다.


타인의 기대에 맞춰 웃는 나.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하는 나.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내 마음을 접어두는 나. 사랑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버려지지 않기 위해 자꾸만 나를 조절하는 나.


그런 나는 겉으로는 더 사랑받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갈등을 만들지 않고, 상대를 만족시키고, 누군가의 필요에 잘 맞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삶은 오래 안정적이기 어렵습니다. 내가 더 이상 상대를 만족시키지 못할 때, 혹은 더 새롭고 흥미로운 무언가가 나타났을 때, 그 자리는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만족시키는 존재로 살아가는 삶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존재 자체로 맺는 관계라기보다, 내가 상대에게 제공하는 기쁨과 역할에 기대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렉산더가 장난감 쥐가 되고 싶어 했던 마음은 더 슬프게 다가옵니다. 그는 단지 장난감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랑받고 싶어서, 살아 있는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누군가의 마음에 드는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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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츌처: 『알렉산더와 장난감 쥐』 (시공주니어) 



버려진 윌리를 보았을 때


알렉산더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는 도마뱀을 찾아가 자신을 장난감 쥐로 바꿔달라고 부탁하려 합니다. 쫓겨나는 진짜 쥐가 아니라, 아이의 손에 들려 사랑받는 장난감 쥐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알렉산더는 버려진 장난감들 사이에서 윌리를 발견합니다. 새 장난감이 생기자 윌리는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으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한때는 사랑받는 것처럼 보였던 윌리가, 누군가의 흥미가 사라지자 구석에 놓이고 만 것입니다.


이 장면은 알렉산더에게 조용한 전환점이 됩니다. 


자신이 그토록 부러워했던 자리에도 외로움이 있다는 것. 

사랑받는 것처럼 보였던 존재도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것.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일만으로는 진짜 안정감을 얻기 어렵다는 것.


알렉산더는 버려진 윌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누군가의 손에 들려 잠시 사랑받는 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나로서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타인의 기대에 맞추며 살아가다 보면 잠시 사랑받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말을 해주고, 타인의 평가를 먼저 살피고, 상대가 원하는 것만을 선택할 때 관계가 유지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사랑은 자주 불안을 남깁니다.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더 맞춰야 할 것 같고, 조금이라도 기대를 벗어나면 멀어질 것 같은 마음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때로는 사랑이라기보다 불안한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일지 모릅니다. 관계라기보다 역할에 가까운 거죠.



나를 바꾸고 싶은 소원이 멈추는 순간


알렉산더는 더 이상 자신을 장난감 쥐로 바꿔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윌리를 진짜 쥐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자신을 위해 품고 있던 소원을, 윌리에게 내어준 것입니다.


이 선택은 단순히 친구를 돕는 장면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알렉산더 안에서 일어난 더 깊은 회복의 장면으로 보입니다.


알렉산더는 장난감 쥐가 되려던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다시 말해, 타인을 만족시키는 존재가 되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조금씩 벗어납니다. 그리고 윌리를 진짜 쥐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것은 타인의 기대에 맞춰 움직이던 또 다른 나를, 다시 살아 있는 자리로 데려오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윌리를 바꾸는 장면이 아닙니다. 윌리를 진짜 삶으로 살게 하는 장면입니다.


우리 안에도 윌리 같은 모습이 있습니다. 사랑받기 위해 만들어낸 표정, 인정받기 위해 익힌 태도, 거절당하지 않으려고 애써온 친절함. 그 모습들이 모두 거짓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나의 전부가 되어버릴 때, 우리는 조금씩 생기를 잃어갑니다.


회복은 그 모습을 없애거나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애써온 나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에 갇혀 있던 나를 다시 살아 있는 자리로 데려오는 일. 누군가의 반응에 맞춰 움직이던 나를, 다시 스스로 느끼고 선택하는 나로 회복시키는 일일 것입니다.



나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삶


자기 존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거창하게 나를 사랑한다고 선언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맞춰진 존재가 되어야만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을 조금 내려놓는 일입니다.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역할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로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천천히 배워가는 일입니다.


내가 나로 있어도 괜찮다는 감각이 생기면, 마음에는 작은 여백이 생깁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나보다 다른 존재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꼭 붙들고 있던 것을 누군가에게 내어줄 수도 있습니다. 알렉산더가 자신의 소원을 윌리에게 내어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더 이상 장난감 쥐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에 가까워졌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일 것입니다.


타인을 만족시키려는 마음은 늘 상대의 반응을 살피게 하지만, 나로 살아도 괜찮다는 감각은 자기 안의 생명을 먼저 돌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누군가를 더 온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를 지워서 상대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모습 그대로 살아 있는 자리에서 타인에게 다정해질 수 있습니다.


알렉산더의 소원은 그렇게 방향을 바꿉니다. 나를 지우고 싶은 마음에서, 살아 있는 나와 살아 있는 너를 함께 회복시키는 마음으로.


진짜 관계는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만들어낸 모습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있는 그대로의 너를 받아드릴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장난감은 사랑받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누군가의 흥미와 필요에 따라 버려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다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느끼고, 선택하고, 관계 맺으며 자기 삶을 살아갑니다.


알렉산더와 윌리가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둘 중 하나가 더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쓸모가 아니라 존재로, 역할이 아니라 생명으로 서로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랑받고 싶어서 나를 바꾸고 싶은 날이 온다면, 먼저 가만히 물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정말 다른 존재가 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지금의 나로도 괜찮다는 확인을 받고 싶은 걸까.나는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는 삶을 향해 가고 있는 걸까.


당신은 누군가처럼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지우지 않아도 됩니다. 타인을 만족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존재로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더 깊은 관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당신 안의 알렉산더와 윌리를 가만히 떠올려볼까요?있는 그대로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숨어 있었나요?그리고 사랑받기 위해 타인을 만족시키던 또 다른 나는, 이제 어떤 살아 있는 모습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나요?




글ㆍ사진_최유림 (비작(주) 대표)
임상미술치료 연구 및 예술교육 기획자.
그림책의 미학적 가치를 심리회복와 결합하여, 어린이와 성인의 마음 성장을 돕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웹: bejak.co.kr / 인스타그램: @i_be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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