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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림의 그림책 마음 화실

함께한다는 건 조금씩 흔들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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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유림 (비작(주) 대표 / 작가, 예술교육콘텐츠 기획자)


오늘의 그림책 : 존 버닝햄,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시공주니어)

함께한다는 건 어쩌면, 같은 배 위에서 조금씩 흔들리는 일을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 나 혼자가 아니라는 든든함, 서로의 웃음과 온기가 한 공간에 모여드는 순간들. 

가족도, 친구도, 일터도, 작은 모임도 대개는 그런 기대 속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알게 됩니다. 함께 있는 일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요. 누군가는 조금 더 말하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조용히 머물고 싶어 합니다. 누군가는 빨리 가고 싶고, 누군가는 조금 천천히 가고 싶어 하죠. 별일 아닌 듯 보였던 작은 습관과 말투, 욕심과 장난이 어느새 관계의 배를 조금씩 흔들기 시작합니다.

존 버닝햄의 그림책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는 바로 그 흔들림을 아주 유쾌하고 따뜻하게 보여줍니다. 함께 타고, 함께 흔들리고, 함께 물에 빠진 뒤에도 다시 따뜻한 자리로 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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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츌처: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시공주니어)


모두를 태워주는 검피 아저씨의 배

검피 아저씨는 강가에 삽니다. 어느 날 그는 작은 배를 타고 뱃놀이를 나가려 합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다가와 묻습니다.

“우리도 같이 가도 돼요?”
검피 아저씨는 흔쾌히 허락합니다. 다만 한 가지 약속을 붙입니다. 다투지 않는다면 타도 좋다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 토끼도 오고, 고양이도 오고, 개와 돼지, 양과 닭, 송아지와 염소까지 차례로 찾아옵니다. 모두가 검피 아저씨의 배에 오르고 싶어 합니다.

검피 아저씨는 누구도 쉽게 거절하지 않습니다. 대신 각자에게 필요한 약속을 조용히 말해줍니다. 토끼에게는 뛰어다니지 말라고, 고양이에게는 토끼를 쫓지 말라고, 개에게는 고양이를 괴롭히지 말라고, 염소에게는 발로 차지 말라고 말이죠. 검피 아저씨는 무조건 “그래, 마음대로 해도 돼”라고 말하는 어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안 돼, 위험해, 너희는 안 돼” 하고 먼저 막아서는 어른도 아닙니다. 그는 초대하되, 함께 있기 위해 필요한 약속을 잊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배와 같은 공동체를 원하죠. 아주 이상적인 공동체입니다. 들어오고 싶은 마음을 막지 않으면서도, 함께 타기 위해 필요한 작은 규칙을 지켜주는 배. 누구든 환영하지만,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조금씩 자신을 조절해야 하는 자리 말입니다.


배가 흔들리기 시작할 때

처음에는 모두 얌전히 배에 앉아 있습니다. 강물은 잔잔하고, 배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다투기 시작하고, 토끼는 뛰어다니고, 고양이는 토끼를 쫓습니다. 개는 고양이를 괴롭히고, 돼지는 소란을 피우고, 염소는 발길질을 합니다.
결국 배는 뒤집히고 맙니다.

이 장면은 가만히 보면 참 우리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관계 안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약속을 지키고 싶고,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도 않죠.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성질이 나옵니다. 참으려 했던 말이 튀어나오고, 숨기고 싶었던 욕심이 드러나고, 별것 아닌 일에 마음이 비뚤어지기도 합니다. 

토끼가 뛰고 싶은 마음을 참기 어려웠던 것처럼, 우리 안에도 저마다의 습관과 충동이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먼저 차지하고 싶은 마음, 지기 싫은 마음, 괜히 장난치고 싶은 마음, 서운하면 돌아서고 싶은 마음. 그런 것들이 조금씩 배를 흔듭니다.

함께한다는 것은 서로가 완벽해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각자 배를 흔들 만한 마음 하나씩을 품은 채, 같은 배에 올라타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관계는 자주 출렁입니다. 하지만 그 흔들림이 꼭 실패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흔들림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함께 있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알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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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츌처: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시공주니어)


물에 빠진 뒤에도 끝나지 않는 관계

이 이야기에서 배는 결국 뒤집힙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크게 혼나고, 누군가는 다시는 배에 타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약속을 어겼으니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검피 아저씨의 세계는 조금 다릅니다.

모두 물에 빠졌지만, 검피 아저씨는 아이들과 동물들을 몰아세우지 않습니다. “내가 그랬지!” 하고 화내지도 않습니다. 모두 함께 강가로 나와 몸을 말리고, 길을 걸어 검피 아저씨의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다 같이 차를 마십니다.

이 장면은 참 따뜻합니다. 실수했지만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다시 따뜻한 자리로 초대받을 수 있다는 것.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이런 용납의 경험은 깊은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의 배를 흔들기도 하고, 누군가 때문에 내 배가 흔들리기도 합니다. 함께하던 일이 엉망이 되고,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관계가 예상치 못한 말과 행동 앞에서 조용히 금이 가버리기도 하죠. 하지만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누구의 잘못인지 끝까지 가려내는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약속은 중요합니다. 책임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젖은 몸을 털고 다시 함께 걸어갈 수 있는가. 실수한 사람을 관계 밖으로 밀어내기보다, 다시 배울 수 있는 자리로 데려갈 수 있는가. 그 너그러움 안에서 사람은 조금씩 자랍니다.


다시 차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마음

검피 아저씨가 특별한 이유는 모두를 태워주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는 배가 뒤집힌 뒤에도 관계를 끝내지 않았습니다. 젖은 아이들과 동물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차를 나눕니다. 그리고 마치 다음에도 다시 올 수 있다는 듯, 이야기는 따뜻하게 마무리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어른의 마음일 것입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실수한 뒤에도 어떻게 다시 만나야 하는지를 아는 마음. 흔들리지 않는 관계를 꿈꾸기보다, 흔들린 뒤에도 다시 앉아 차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마음 말입니다.

가족 안에서도, 수업 안에서도, 일터와 공동체 안에서도 배는 자주 흔들립니다. 누군가는 약속을 잊고, 누군가는 자기 마음을 조절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서툰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때마다 모든 관계를 끝내버린다면, 우리는 아무 배에도 오래 타고 있지 못할 것입니다.

함께한다는 건 조금씩 흔들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도 다시 균형을 찾아보는 일입니다. 물에 빠진 뒤에도 서로의 젖은 옷을 보며 웃을 수 있는 일,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며 다시 시작해보는 일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누군가와 함께 탄 배가 조금 흔들리고 있다면, 너무 섣불리 그 관계를 정의하거나 정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흔들림은 끝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다시 배우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자, 이제 당신이 함께 타고 있는 배를 떠올려볼까요?

그 배를 흔들고 있는 마음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물에 빠진 것 같았지만, 다시 차 한 잔 앞에 마주 앉아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글ㆍ사진_최유림 (비작(주) 대표)
임상미술치료 연구 및 예술교육 기획자.
그림책의 미학적 가치를 심리회복와 결합하여, 어린이와 성인의 마음 성장을 돕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웹: bejak.co.kr / 인스타그램: @i_be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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