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특집1- 영국 박물관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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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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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특집1- 영국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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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ish Museum


 

영국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모던… 런던의 대다수 박물관은 방문객에게 무료로 문을 연다. 2001년 12월 당시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끄는 영국 노동당 정부는 런던의 공공 박물관 입장을 무료로 제공하기로 결정했고 모든 사람이 국가 소장품에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과 함께 아름다운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다른 관광객들에게 주요 명소 역할을 하니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취지다. 



실제 이 결정 이후 박물관 입장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영국 정부에 따르면 2001년에서 2016년 사이에 이전에 방문에 해당하는 수치의 184%가 증가했고 2015년 ~ 2016년 사이 국립 박물관 입장객이 연인원 4,700만 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상 국제 박물관 법에 따라 자국의 유물이 75퍼센트가 넘지 못하기 때문에 돈을 받아서 안되는 것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그다지 고맙지는 않았다. 제국주의의 문화재 약탈을 유물 기증, 기부라고 소개하는 것도 사실 불편했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도 수많은 약탈품들이 있지만 프랑스의 경우 자국의 유물도 많은데다 돈을 주고 정상적으로 구매한 경우가 더 많이 있지만  영국 박물관과 같이 묶여 욕먹는 것은 사실 약간 억울할 수 있다. ㅋ 명예 프랑스인이 된 것 같지만 모든 면에서 프랑스를 무조건 옹호하는 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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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왔으니 피쉬앤칩스도 먹어줬다. 런던은 골목골목도 다 예쁘다.




아무튼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영국 박물관으로 향했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기대하고 들 떠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가 다녀온 날은 영국 박물관 노동자들이 임금 파업 중이라  열려있는 전시장이 제한적이었다. 그래도 파업의 도시 파리에서 온 나에게 노동자의 파업은 당연한 그들의 권리이자 결국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불평하지 않았다. 또 한편으로는 박물관은 얼른 보고 나가서 시내 구경을 많이 할 수 있겠구나 내심 기쁘기도 했다. ㅋㅋ 



아무튼 박물관은 돈을 벌거나 세금을 내기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 교육과 평생 학습에 기여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그들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있었다. 박물관은 역사나 예술에 대해 배우는 방법 그 이상이며 평화와 사색을 제공하고 다른 세계와 다른 사고 방식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문화에 대한 내공을 갖는다는 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므로 박물관에서 보내는 시간이야 말로  곧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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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즈강 남쪽 빈민가를 개발하며 문화 도시로 만든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영국 박물관은 외양은 마치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하게 한다. 내부 도서관은 칼 마르크스, 조지 오웰 등의 대문호들이 공부하고 책을 읽었던 곳이라고 한다. 분명 어렸을 때 들어가보고 구경했던 사진이 남아있는데 17년만에 다시 오니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ㅋㅋ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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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오빠의 허락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올린 17년 전의 추억


 

영국박물관이 자랑하는 대표작 즉  3천년의 이집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람세스 2세와 아멘호텝 3세의 조각상을 직접 만나 보았다. 이집트 조각 갤러리의 작품들은 3천년의 파라오 역사를 보여주는데 큐레이팅 또한 이집트학 분야와 함께 발전했다고 한다. 이집트학은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을 동반한 프랑스 과학 탐험에서 시작되었는데, 영국이 프랑스를 패배시킨 후, 로제타 스톤과 마지막 이집트 파라오의 석관을 포함하여 가장 중요한 발견물을 가져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샹폴리옹이 해독한 고대 이집트어와 상형문자로 유명한 로제타 스톤은 보지 못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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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총영사 헨리 솔트(Henry Salt)는 이집트 총독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로부터 고대 유물을 수집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는데, 그 중 다수는 벨조니 (Giovanni Belzoni)가 굴착기를 사용하여 람세스 2세의 거대한 흉상을 포함한 조각품을 약탈해왔다. 그래서 유물들에 구멍이 뻥뻥 뚫려있는 것이 그 흔적이라고 한다. 게다가 자기의 위대한 약탈 업적을 남기고 싶었던 벨조니는 작품에 또한 그의 이름을 새긴 대단한 ( ?) 인물이었다. 이집트의 사원과 무덤에 배치된 조각상과 벽을 통째로 가져온 영국의 만행에 두손 두발을 다 들게 된다.  


이집트의 예술은 산 자가 아닌 죽은 자를 위한 예술이라 영원성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코로 영혼이 왔다 갔다 하며 부활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다음 왕이 즉위하면 그 전의 왕의 코를 부시는 경우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코가 없는 조각이 많다. 그리고 왕의 왕관에 새겨진 뱀도 많이 훼손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왕을 훼손하는 자에게 저주를 내리는 뱀이기 때문에 뱀부터 먼저 없애고 코를 날려버린다는 것이다.


 


님루드 왕 아슈르나시르팔 2세(기원전 883-859년)의 왕궁 입구 측면에 있는 거대한 날개 달린 인간 머리 사자 두 마리를 만나볼 수도 있었는데 참고로 이는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현대 이라크에 해당하는 아시리아 역사의 삶을 보여주는데, 사자 사냥 부조, 라키시 포위 공격, 코르사바드에 있는 사르곤 2세 왕의 궁전 내부 장면이 전시되어 있다. 초자연적인 수호자로 의도된 이 거대한 형상은 코르사바드에 있는 사르곤 2세 왕의 궁전을 지키고 모든 종류의 악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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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문화적 힘이 절정에 달했던 아테네의 조각과 건축물도 감상할 수 있었는데, 기원전 5세기 대부분 동안 아테네는 그리스 본토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였다. BC 480년 페르시아의 약탈 이후 아테네의 신성한 심장부인 아크로폴리스에 수많은 구조물이 재건된 이 시기의 여러 조각품을 전시한다. 기원전 432년에 파르테논 신전이 완성되었을 때 아테네는 이미 스파르타에 맞서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이었다. 기원전 404년 최종 패배는 아테네의 황금기를 종식시켰고 도시에서 제국, 방어 시설은 물론 일정 기간 동안 민주 정부마저 박탈되고 말았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건축 계획은 전쟁으로 인해 중단되었던 것이다.



기원전 2세기와 1세기에 로마가 지중해를 정복하는 동안 그리스 조각상은 엄청난 찬사를 받게 되면서 약탈을 많이 당했다. 그래서  많은 조각상이 로마로 반입되면서 로마의 조각도 발전하게 된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 원본을 구할 수 없을 때 로마 후원자들은 공공 건물, 개인 별장 또는 신에게 바치는 성소를 장식하기 위해 새로운 조각품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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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아이 석상이 있는 전시장에 들어가면 박물관측에서는 전 세계 사람들이 삶과 죽음의 힘든 현실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준다. 호아 하카나나이아(Hoa Hakananai'a)는 1868년 폴리네시아 라파 누이(이스터 섬)의 인상적인 기념 마을 오롱고에서 발견되었다. 이 현무암 조각상이 언제 조각되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1000년 서기 1100년, 모두 모아이라고 불리는 비슷한 크기의 조각상이 라노 라라쿠의 화산재에서 채석되고 있었다. 조상, 신, 삶과 죽음에 대한 폴리네시아의 관심을 보여주는 신성한 존재이다. 모아이 석상을 영국에서 보니 반갑기도 하고 정말 세계 각국의  주요 유물들을 꼼꼼히 다 가져왔구나 하는 얄미운 마음이 들었다.



Cradle to Grave 라고 불리는 중앙 설치물은 오늘날 영국의 전형적인 남성과 여성의 질병력을 설명하면서 건강과 웰빙에 대한 접근 방식을 살펴본다.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가 건강과 웰빙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면서 인간으로서 공유하는 문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박물관을 나와 시내를 돌아다니며 런던아이,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 런던 시내를 유람선으로  둘러보고 타워브릿지를 지나 셰익스피어 글로브(Sakespeare's Globe)도 구경했다. 런던의 템즈강 유역에 위치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 예술 장소이자 문화 명소이자 교육 센터인데 아무래도 스페인과 영국을 다녀오다보니 문학도로서  대문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1616년 4월 23일 같은 날 세상을 떠난 영국의 셰익스피어와 스페인의 세르반테스를 떠올리며 글로브 극장을 가 본 것이다. 문학 장르중에서도 대사와 감정이 살아움직이는 희곡을 제일 좋아하는 편인데 다음 런던을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이 곳에서 연극을 한 편 꼭 보고 싶다.




이 극장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많이 공연한 곳으로 유명하며 그의 마지막 희곡 공연 중 실수로 소실된 곳으로 유명하다. 1613년 6월 29일, 특수 효과에 사용되는 극장용 대포의 불타는 뭉치가 초가지붕에 옮겨붙으며 화재는 순식간에 건물 전체를 초토화시켰다. 1996년 원래 위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동일하게 재건되었다.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희곡을 썼던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장 글로브 극장을 템스 강 남쪽 기슭에 있는 런던 서더크 자치구에 재건한 것이다. 안전을 고려해   1,400명의 관객만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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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가 자주 다녔던  펍



런던의 대표 명소들을 거닐며 이 도시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었다. 파리지엔느로서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런던은 파리가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신선하고 모던하고 세련된 도시였다... 물론 런더너들은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ㅎㅎ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 사진 원본은 https://blog.naver.com/mangchiro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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