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식 미술관: 어린 왕자를 만나다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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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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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 미술관: 어린 왕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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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 : À la rencontre du petit prince 



발자크의 집에서 72번 버스를 타고 세느강을 따라 에펠탑, 콩코드광장, 오랑주리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을 구경하며 이동하다 pont royal 역에 내려서 튈르리 정원과 루브르 박물관 사이길로 걸어서 장식 미술관을 갈 수 있다. 지하철을 주로 타고 다니느라 바깥 풍경을 자주 못 보는데 오랜만에 버스를 탈 때면 마치 관광객이 된 듯 설렌다. 이방인으로서 프랑스에서의 삶이 늘 좋고 행복한 것은 아니어서 가끔 화가 나거나 우울할 때 아름다운 파리의 거리와 모습들을 보며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풀어진다. 게다가 이렇게 파리 곳곳에서 좋은 전시들이 항상 진행 중이니 일단 밖으로 나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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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미술관은 방문할 때마다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다. 물론 내부에도 사람이 많다.. 오늘도 역시나 많았는데 이번에는 까르띠에와 이슬람 예술전이 끝나고 하는 따끈따끈한 '어린왕자와의 만남' 이라는 주제의 전시가 진행중이다.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문학의 걸작인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기리는 전시이다. 작가, 시인, 비행가, 탐험가, 언론인, 발명가, 철학자 등으로 활동한 생텍쥐베리( Antoine de Saint-Exupéry)의 다양한 면을 기념한 전시이다. 600점 이상의 작품을 쓴 그는 평생을 인본주의적 이상을 작품의 진정한 원동력으로 삼았다. 이 전시를 위해 뉴욕의 Morgan Library & Museum 에 보관되어 있고 지금까지 프랑스 대중에게 공개된 적이 없는 원본 원고를 수채화, 스케치 및 드로잉(대부분 미공개)과 비교하고 사진, 시, 신문과도 비교해 놓았는데 사진 촬영이 제한된 부분도 꽤 많았다. 



어릴때 '어린왕자' 를 책으로도 연극으로도 접했지만 불어 원서로 읽어보게 되니 참 감회가 새롭다. 수많은 명문장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 Si tu viens, par exemple, à quatre heures de l'après-midi, dès trois heures je commencerai d'être heureux. Plus l'heure avancera, plus je me sentirai heureux. A quatre heures, déjà, je m'agiterai et m’inquiéterai ; je découvrirai le prix du bonheur ! Mais si tu viens n'importe quand, je ne saurai jamais à quelle heure m'habiller le cœur » 이다. (예를 들어 네가 오후 4시에 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더 행복해질 것 같아. 4시에는 이미 초조하고 걱정이 돼 ; 나는 행복의 대가를 발견할 거야! 하지만 네가 아무 때나 오면 내 마음을 언제 단장해야 할지 몰라.) 그냥 내 맘대로 번역이긴 한데 전문 번역가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자랑이 아니라 문장 자체가 심오한 뜻을 담고 있지 않아 있는 그대로 해석해도 된다. 어쨌든,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예쁜 말이면서도 어린아이의 입을 통해 이런 따뜻한 말을 할 수 있게 소설을 쓴 부분이 놀랍다. 나는 누군가를 이런 온전한 사랑의 마음으로 기다려본 적이 있나 생각하게끔 하는 문장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시계를 보다 우연히 3시나 4시면 이 문장이 떠오른다. 



또 인상적인 부분은, 소설 서문에서 생텍쥐페리는 절친한 친구 레옹 베르트에게 이 책을 헌정하며 « Toutes les grandes personnes ont d’abord été des enfants. (Mais peu d’entre elles s’en souviennent.) ». (모든 어른들은 모두 처음엔 아이였다. (그러나 그들 중 소수만 기억한다).)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생텍쥐페리는 아동문학이 우리 모두가 어린이였음을 끊임없이 기억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가장 와닿는다. 동시에 이러한 문학은 우리가 어렸을 때 읽었던 추억을 오늘날의 아이들과도 공유할 수 있기에 영원한 고전이 될 수 있었다.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와 시적 삽화가 가미된 글은 이 책을 유명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철학적 의미가 부여된 아동문학인 것이다. 작가의 글과 그림, 삶에 흩어져 있는 궤적들이 생텍쥐페리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되기도 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생텍쥐페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로서의 그의 삶은 책을 통해 보았지만 비행사로서의 삶을 이렇게 자세하게 알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가 썼던 비행일지, 사용했던 물품들, 비행을 통해 받은 영감들을 실제로 보니 파일럿의 삶이 결국 그에게 짧은 일생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긴 했지만 비행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려 했던 것 같다. 



전시장 마지막 부분에는 각 나라에서 번역된 어린왕자 버전들이 있었는데, 한국 버전은 무슨 고조선 시대 책처럼 오래된 번역본이었다. 미술관 측에 내가 가지고 있는 어린왕자 책을 기증하겠다고 밝히고 싶은 정도였는데, 그나마 이 옛날 책이 아직도 남아있는데다 프랑스 미술관에 전시되었다는 점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전시장의 전체적인 큐레이팅 또한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관람객들이 다른 별에 와 있는 것이 느끼도록 꾸며 놓았고 전시장 조명도 비행기 모양으로 아주 센스있게 준비했다.


전세계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따뜻한 감동을 준 '어린왕자'가 전시장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와 함께 한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던, 공감능력이 돋보인 전시였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 사진 원본은 https://blog.naver.com/mangchiro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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