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히읗은 오는 7월 3일부터 8월 2일까지 독일, 태국, 한국 출신의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는 그룹전 《Soft Forgetting》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기억과 망각 사이, 그 사이의 미세한 감각의 층위를 탐색하며, 쿠르트 프리츠쉬(1995년생, 독일), 나탈리 사시 오르간(1999년생, 태국), 원민영(2000년생, 한국)의 신작들을 선보인다.

쿠르트 프리츠쉬(Kurt Fritsche), <Untitled>, 2025
Tin inlays in lacquered wood, 50 x 90 cm © 작가, 상히읗
나탈리 사시 오르간(Natalie Sasi Organ), <Palms together>, 2025
Oil on primed artist board, varnished, engraved stainless steel miller frame, moonstone gems
17.5 x 23.5 x 3.5 cm © 작가, 상히읗
원민영, <Grape-Laying Bees>, 2025
Metallic paint on resin, 가변크기 © 작가, 상히읗
전시 제목인 ‘Soft Forgetting’은 기억이 우리를 단단히 붙잡는 동시에 조용히 소멸해가는 양가적인 속성을 담는다. 세 명의 작가는 기억이라는 감각을 구성하는 선택의 과정을 통해, 어떤 것은 붙잡고 어떤 것은 흘려보낼지를 사유하며, 그 사이에 탄생하는 새로운 감정과 가능성의 결들을 작품에 담아낸다.
쿠르트 프리츠쉬는 조각과 사진을 매개로 변화(transformation), 상실, 기억의 과정을 탐구한다. 일상에서 발견한 재료와 주조된 형상을 활용해, 시간이 사물과 구조에 남기는 흔적을 살핀다. 최근에는 상실의 경험에 기반한 작업을 선보여 왔으며, 죽음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동시에 그로부터 멀어지는 어딘가에 머무는 상태를 조형화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주석으로 주조한 동전을 나무 패널에 새긴 신작을 선보인다. 동전에는 작가가 지난 1년간 직접 촬영한 이미지들이 각인되어 있으며, 특히 폼페이 근처 고고학 유적지인 헤르쿨라네움에서 찍은 해골 이미지가 눈에 띈다. 작가는 조각과 사진 모두 무언가를 ‘보존’하려는 시도라는 점에 주목한다. 폼페이 화산의 갑작스러운 분출이 마치 사진 셔터처럼 고대의 한 순간을 정지시켰다는 점에서, 신체가 시간 속에 고정된 사진적 존재로 다가왔다는 설명한다. 이 외에도 작가는 폐업한 가게의 간판 글자나 인근 주조소에서 얻은 청동 활자 등 길거리에서 마주한 문자들을 동전에 새겨 넣었다. 뼈와 유사한 형태를 가진 이 문자들은 기록과 소멸의 경계에서 재료와 의미를 새롭게 구성하며, 기억해야 한다는 감각과 결국은 잊히고야 말 것이라는 예감 사이에서 작업의 물질적 원리를 성립시킨다.
나탈리 사시 오르간은 주요 역사가 놓치거나 배제한 단절된 역사를 탐구하며, 다양한 시대와 장소, 문화가 뒤섞인 복잡한 기억의 층위를 드러낸다. 자신의 정체성과 주변 환경에서 출발해 세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다양한 기록과 신화를 함께 엮으며, 역사와 기억이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나뉘지 않는, 때로는 모호하고 중첩된 이야기들임을 보여준다. 이번 상히읗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들은 집단 기억, 가족 관계, 기원, 애니 미즘 신앙에 대한 내러티브를 설치와 회화를 통해 탐구한다. 각 작품은 스테인리스 프레임, 텍스트, 체인메일, 인그레이빙 등의 재료를 사용해 기억을 시각적으로 환기하며, 하나하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파편적인 서사를 이루며 이어진다. 특히 토끼띠인 작가와 말띠인 어머니 사이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여성성, 생명력, 이주와 연관된 상징을 토대로 세대 간 기억 형성과 화해의 가능성을 살핀다. 이와 연결된 가족의 기억 장소와 역할 변화의 공간들은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함께, 정체성과 소속, 권력의 역사를 복합적으로 담아낸 회화의 배경이 된다. 토끼와 말이라는 상반된 존재는 정지와 움직임, 직관과 인내라는 이중성을 드러내며, 신화, 기억, 장소성의 층위를 엮어 세대 간의 유대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를 서사적으로 탐색한다.
원민영은 단단히 규정되지 않는 감정의 순간을 포착하는 회화를 선보인다. 가볍고 농담처럼 보이는 이미지 속에 불편함과 아이러니를 숨겨 두며, 기억이 흐려지는 순간, 혹은 버려지는 감정들을 되새긴다. 이번 전시에서는 체리라는 이미지가 중심에 놓인다. 예쁘고 장난스러운 외형 아래 잠재된 정서적 불안, 꾸며진 감정과 억제된 태도가 중첩된 상징물이다. 작가는 “괜히 오래 들여다보는 순간”에 떠오르는 낯설고도 진실한 감정을 중요시하며, 설명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의 무게를 담아낸다.
《Soft Forgetting》은 세 작가의 감각적이고 내밀한 시선을 통해, 기억이란 얼마나 연약하고도 집요하게 우리를 사로잡는지를 보여준다. 이 전시는 개인의 기억과 사회적 서사, 물질과 감정 사이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진동들을 예민하게 포착하며, 우리가 ‘기억하고 잊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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