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드킨 뮤지엄: 오십 자드킨 – 아뜰리에의 삶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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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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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드킨 뮤지엄: 오십 자드킨 – 아뜰리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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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ée Zadkine: Ossip Zadkine - Une vie d'ateliers (2022년 11월 11일부터 2023년 4월 2일까지)


 

지난 여름, 자드킨 뮤지엄을 갔을 땐 상설전만 진행중이었고  다음 기획전시는 11월에 있기에 한참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11월이 되어 그 기획전을  보고 왔다. 올해도 벌써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니 시간은 참 빠르게 흐른다. 여름에는 뙤약볕을 받으며  전시를 보았는데 오늘은 촉촉한 초겨울비가 내려서인지 무척 운치 있는 관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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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오십 자드킨(Ossip Zadkine)과 그의 아내인 발렌타인 프락스(Valentine Prax)는 1928년부터 1967년까지 거의 40년을 아사스 거리(rue d'Assas)의 집, 아뜰리에, 정원에서 함께 보냈다. 그리고 특히 올해는 1982년에 문을 연 자드킨 뮤지엄의 40주년을 기념하는 해라고 한다. 이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박물관은 이 부부 작가의 작업과 작업실로 방문객을 초대하는 « 아뜰리에의 삶 » 전시를 개최한다. 거의 100점에 가까운 작품이 전시되는데 자드킨의 훌륭한 걸작 뿐만 아니라 프락스의 그림과 수많은 미공개 사진, 안드레 케르테즈 (André Kertész), 마크 보 (Marc Vaux) 같은 위대한 사진 작가의 사진도 함께 공개한다.  "아뜰리에 정신"(l’esprit d’atelier) 을 불러 일으키는 새로운 시노그래피로 박물관의 모든 방을 소개한다.



40년 동안 이 집의 벽과 나무는 두 예술가의 일상과 창작을 목격했다. 그래서 이 공간은 두 사람에게 물리적, 정신적 보금자리이자 쉼터가 되어 주었고, 이 창조의 현장은 또한 두 사람의 회고록의 배경이자 오늘날 박물관 아카이브의 많은 사진의 배경으로 사용되었다. 근데 사실 자드킨의 관상(?)을 보면 정말 엄청나게 까칠할 것 같은데 40년간 한 여인과 행복하게 한 평생 살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역시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되나 보다.^^       어쨌든, 두 예술가들의 집이자 아뜰리에였던 공간에서 예술가의 숨결을 느껴보는  좋은 기회였다.  



전시실은 자드킨의 일대기를 시간 순서대로 구성해 놓았다. 1910년 프랑스에 도착한 자드킨은 몽파르나스 지역에 터를 잡았고,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 곳에 금세 익숙해졌다고 한다. 작품 초기에는 돌 같은 재료로 조각을 했고 점점 시멘트와 같은 새로운 재료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그의 조각들은 정체성을 찾아갔다. 그러나 이 기세는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을 때 잔인하게 중단되었고, 이 극한의 경험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자드킨은 발렌타인 프락스와의 결혼을 통해 점차 회복해 나갔다. 다시 자신의 예술관에 있어 다양한 영감의 원천을 탐구하고 나무와 돌에 대한 매력을 확인했다. 결혼 후 몇 년 동안 자드킨은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며 플라스틱을 이용한 작품에  실험적으로 도전하며 한동안 큐비즘의 영향을 받아 조형, 금도금, 옻칠과 같은 새로운 기법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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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초반에는 프락스와 자드킨이 작업을 함께 하면서 고대 그리스와 신화의 유산에 대한 공통된 관심을 발견했고 이는 자드킨의 작업에 큰 형식적 진화를 가져다 주었고 이 결과 새로운 대형 작품이 등장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이 창조적 자극은 2차 세계 대전으로 중단되었다. 자드킨은 미국 뉴욕으로의 망명을 어렵게 결정하고  프락스는 레 아르크(Les Arques)로 피신한다. 이 불행하고 비극적인 시기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숲, 파괴된 도시, 오르페우스, 프로메테우스 등 위대한 조각들이 탄생했다. 역시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듯, 시대가 안 좋아서 상황이 나빠서 이런 말들은 다 핑계인 것 같다. 어느 시대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훌륭한 작품과 인물은 탄생하게 마련이다.



1945년 미국에서 돌아온 후 자드킨은 현재 박물관이 된 집이자 아뜰리에를 찾았고, 이곳에서 토템 오브제를 통해 창작 과정을 이해하고 구현했다. 뿐만 아니라 일상의 오브제, 사모바르, 책, 아코디언과 함께 아뜰리에를 꾸미고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자드킨의 생애 동안에 집-아뜰리에는 환영과 사색의 장소가 된 것이다. 1967년 자드킨이 사망한 후, 프락스는 화가로서의 자신의 경력을 쌓으면서 한편으로는 자드킨의 조각 작품을 보호하고 홍보하는 데 전념했다. 1978년에 그녀는 아사스 거리에 박물관을 설계한다는 조건으로 그녀의 모든 재산을 파리 시에 유증했다. 이런 게 참 사랑인걸까? 그렇게 1981년 4월 15일, 발렌타인 프락스는 사망했고 1년 후인 1982년 4월 19일에 자드킨 박물관이 개관했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도 대략 이 공간에 대한 포스팅은 했었지만 이렇게 두 예술가들의 공간의 역사와 배경을 자세히 알고 나니, 심리적으로 그들과 좀 더 친밀해진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자드킨의 작품들을 우리 집 마당에도 갖다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들이 많아서 참 평화롭고 행복한 일요일 오후를 만끽했다. 비가 와서 정원을 산책하지는 못했지만 비가 오니 사진은 오히려 더 잘 나온 것 같아서 이 또한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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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귀가하는길에 피에르라푸 광장(Place Pierre-Lafue)에서 드레퓌스 장교를 기리는 동상을 발견했다. 프랑스 예술가 루이 미텔베르그 (Louis Mitelberg)가 1985년에 만든 알프레드 드레퓌스 (Alfred Dreyfus)에게 경의를 표하는 동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내가 살기를 바란다면, 내 명예를 돌려주시오." (Si tu veux que je vive, fais moi rendre mon honneur) 라고 드레퓌스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췌문이 적혀 있었다. 사실 이 장소는 수도 없이 지나갔었는데 그동안은 관심이 없다가 조각들을 보고 나오니 눈에 들어왔다. ㅋㅋ ㅠㅠ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 사진 원본은 https://blog.naver.com/mangchiro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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