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ire Internationale d’Art Contemporain 2019(피악2019)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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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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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ire Internationale d’Art Contemporain 2019(피악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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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ire Internationale d’Art Contemporain 2019(2019 국제 현대 미술 박람회)는 매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데 (이하 피악) 스위스 아트바젤, 미국 아트 시카고와 함께 세계3대 아트페어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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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고풍스러운 건물 그랑빨레(grand palais)에서 현대미술 작품들이 전시되는 것이 과연 어떤 느낌일까 기대가 되었다. grand palais에 들어가기 전 광장에 솜사탕이 흩날리고 있었는데 모두들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서 먹길래 나도 따라서 먹어 봤는데 달달한 맛과 날아다니는 솜사탕을 잡는 재미에 들려 전시 입장전부터 신났다. 피악도 처음 보고 grand palais도 처음 들어가 보는 날이라 마치 유치원생 소풍만큼 설레었다. (그러나 막상  기대가 커서 인지 실망되는 부분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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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날라다니는 솜사탕




들어가자 마자 눈에 익은 단색화가 있어 자세히 가보니 역시 우리나라 이우환작가 작품이었다. 리움을 비롯해 우리나라 여러 미술관에서 많이 본 작품이라 반가워서 인증샷도 찍었다. 파리에서 베르사이 궁 뿐 아니라 많은 곳에서 개인전도 하셨고 아마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 작가가 아닐까 싶었다. 이우환은 본인의 작품을 가장 이론적으로 잘 설명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현대미술에서 작품은 텍스트 없이는 사실 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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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뉴욕에서 온 갤러리가 이브클랭의 작품을 선보였는데 얼마전 그의 대작들을 많이 본 관계로 급 반가움이 밀려왔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주로 내가 아는 작품들이 있는 부스에 발길이 멈춰진다.



20세기 조각의 거장인 루이즈부르주아 (Louise bourgeois) 의 그림도 있었다. 거미를 비롯한 조형 작품들은 많이 보았는데 그의 회화작품은 처음 보았다. 자기고백 예술의 창시자인 그녀는 어린시절 아버지의 불륜으로 인한 상처와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페미니즘적 세계관을 작품에 녹아냈던 작가였다. 수많은 드로잉과 회화작업을 거쳐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마멍(maman)’이 나오게 되었으리라.



루이즈 뿐 아니라 pierrette bloch. Pierre Soulages ,  장 드뷔페 등등의 거장들을 같은 부스 공간에 모아둔 갤러리는 인상이 깊어 이름까지 찍어두었다. < 카스튼 그레브 갤러리> 더군다나 이 곳은 판매되었음을 알리는 빨간 스티커가 여기저기 많이 붙어 있었다.



한편, 내 사랑 자코메티의 쁘띠 조각들이 보이길래 얼른 들어가서 인증샷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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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내가 피악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쿠사마를 보러 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작품 하나밖에 보지 못했다. 며칠전부터 피악 공식 인스타그램에 방돔 광장에 쿠사마의 대왕 호박을 설치해 놓았다는 피드가 올라 왔기에 엄청 기대를 안고.무려 그랑팔레에서 지하철 2코스를 더 타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갔는데 어젯밤부터 오늘아침까지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어디론가 증발(?)되어 버렸다. 너무 황당하고 허무해서 내 눈에만 안 보이는거냐며 같이 간 친구만 들들 볶았다. 분명 인스타에는 10월21까지라고 했는데...


프랑스에 살면서 참으로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처리들을 많이 겪었지만 올해 들어 가장 어이없는 순간이었다.



눈길을 끄는 설치물을 따라가 보았다. 멀리서 볼 때  군번줄로 갑옷을 만든 작가 서도호의 작품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양혜규 작가의 설치 작품이었다. 양혜규 작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서울과 독일에서 활동하는 시각예술가로 동시대 미술을 통해 보다 정확하고 직접적으로 익명의 다수와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다. (작가의 인터뷰 중에서 발췌) 특히 그의 작품속에 ‘외로움을 떨치지 않고 외로움과 더불어 살 것’ 을 담아낸다고 하니 외로운 유학생에게도 와닿는 정서였다.



 2년전 독일 카셀 다큐멘타에서 보았던 보자기 작가 김수자의 작품도 나와 있었다. 역시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으로 승화할 수 있어야 국제무대에 당당히 오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스 해링의 작품도 나와 있었는데  미국의 하위문화로 낙인찍힌 그래피티 (낙서화)의 형식을 빌려 새로운 회화 양식을 선도한 작가이다. 미니멀한 선과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면서,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표현이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게다가 사회적 이슈까지 거침없이 드러내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라는 점을 높이 평가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시대를 잘 타고난 작가인 것 같다.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다양성과 오픈 마인드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한낱 낙서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장 미셸 오토니엘의 작품들은 한국의 국제갤러리 소속으로 나왔던데 몇 년전 서울에서도 개인전을 했다고 한다. 현대미술계에 신화적 누벨바그를 일으키는 프랑스 예술가로 많이 소개되었는데 오늘 실제로  보니 구슬속에 담긴 작가의 상상력이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아트페어인 키아프와 아트부산에서 자인제노의 객원큐레이터 자격으로 부스를 지켜본 경험이 있어서 아무래도 일반 관람객으로 온 것과 갤러리스트로 부스를 지킬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그 때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갤러리 부스를 방문하고 질문도 하는 것이 반가웠고 판매가 이뤄질 때는 더없이 뿌듯했었다. 우리 갤러리 부스가 제일 돋보이고 싶은 욕심이 앞서 제대로 다른 부스의 작품들을 감상할 시간은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미래의 컬렉터로서 아트페어에 와 보니 지금 당장은 못 사지만 작품 구매에 대한 안목을 높일 좋은 기회였고 갤러리스트로서 와 본 경험 때문인지 피악의 운영 방식이나 전시기획에 대해서도 배울점이나 잘못된 점을 의식적으로 찾아내려고 하는 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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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수업시간에 폴 발레리가 쓴 ‘Le problème des musées’ 의 텍스트가 생각났다. “나는 박물관이 싫다, 편리하고 유용하긴 하지만 모든 것들이 무작위로 배치되어 있고 섞여 있으며 인위적이라 작품의 가치가 서로 잡아 먹히고 있다” 는 발레리의 말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도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라며 약간 삐딱하게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오늘 발레리의 말에 완전히 공감했다. 물론 아트페어의 컨셉 자체가 여러 갤러리들의 소장품과 작가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게 하는 열린 시장이지만..너무 많은 작품들과 갤러리에 둘러싸여 내가 뭘 보는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혼란스럽고 어수선했다.


게다가 생존 작가나 신인 작가 중에 눈에 띄는 작품은 별로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내가 놀라거나 좋아했던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이미 거장이 된 작고한 작가의 것들이었다. 이미 검증이 끝나 대중적인 선호도가 확실한 작품들만 초대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이것이 프랑스 현대미술의 현주소인가! 영국이나 미국 독일의 아트 페어도 이럴까 궁금했다. 



디자인 가구를 출품한 갤러리들도 많았는데 솔직히 사요궁 건축가의 가구전에 비해서는 많이 퀄리티가 떨어져 보였다. ( 무료였던 사요궁 전시에 비해 피악의 학생할인 입장료가 25유로나 되었던 것도 불만 사항)


마침 홍콩 가구 디자이너가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했었는데 이 또한 상당히 실망이었다. 회화나 조각가들이 자기 작품에 대한 창작 동기나 영감 작가 의도들을 들어볼 것으로 기대했는데 아무래도 가구 디자이너이다 보니 상업적 측면이 강해 비즈니스 이야기만 하는 바람에 잠시 듣다가 일어섰다. 영어로 진행되어 내가 잘 이해 못한 부분도 있겠지만 마음 한구석에 지금 홍콩의 실상이 심각한데 여기 와서 한가롭게 이기적으로 가구나 팔고 있나 하는 반감도 살짝 들었다. (오버일 수도 있으나 역사의 무임승차자들은 좀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함)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처음 에펠탑이 등장했을 때 그 특유의 철골 구조로 인해 파리의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들 했으나 이후 에펠탑 없는 파리는 상상할 수 없게 된 것처럼 이런 느낌은 현대미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낯설음으로 인한 신선함 절반 거부감 절반이다가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공감을 얻으면 시대의 아이콘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음주에 시험이 3개나 있는 관계로 그랑빨레를 벗어나 야외에(튈르리 공원 콩코드광장 등) 설치된 작품들을 가서 볼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 사진 원본은 https://blog.naver.com/mangchiro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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