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영화! 프랑스의 예술, 이미지 및 쇼 (1833-1907)전/오르세 미술관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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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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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영화! 프랑스의 예술, 이미지 및 쇼 (1833-1907)전/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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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영화! 프랑스의 예술, 이미지 및 쇼 (1833-1907)

Enfin le cinéma ! Arts, images et spectacles en France (1833-1907) 


11월 바캉스때 오르세에 갔다가 이 전시 소식을 알게 되었는데 오늘에서야 제대로 관람을 했다. 영화 관련 전시인 만큼 파리3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친구와 특별 동행했다. 역시나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 나의 자랑스러운 친구를 통해 깨알 상식과 많은 정보들을 알게 되어 뿌듯한 하루였다. 친구는 오르세를 가는 도중에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연신 파리의 거리를 담았다. 영화인은 어딜 가나 이렇게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셔터를 눌러대는구나 싶어서 역시 남다르다 생각했다. 친구의 이런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반해 카메라의 "카" 자도 모르면서 충동구매 욕구가 생기는 걸 자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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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3대학 영화 전공자의 포스^^ 



오르세의 이번 시네마 전시 설명에 따르면, 20세기 초 영화는 기계나 매체 처럼 세계, 신체, 표상을 전유하는 방법에 불과하지만 새롭고 대중적으로 등장한 전망은 존재와 사물의 움직임에 매료되어 "현대성"을 구경거리로 만들고자 하는 도시 문화의 산물이라고 분석한다. 1895년 파리의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사진”을 프로젝션한 것은 사실 오랜 시간 연속된 시각적 장치와 명소(파노라마에서 영안실, 수족관, 박람회를 포함한 밀랍 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중 가장 최신이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이후, 이미지 순환의 전통에서 비롯된 영화는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예술적, 과학적, 학문적인 모든 관행의 상속자로 개념정리 되었다. 영화의 의미가 확장, 재활용되어 기존의 통념을 능가하는 "통합 리얼리즘"의 환상이 특정 문화적 동기의 프리즘을 통해 질문되고 분석된다고 정의한다. 1895년부터 1907년까지의 프랑스 영화 제작을 사진의 발명에서 20세기 초까지 예술의 역사와 함께 도시의 광경에 대한 매혹, 자연의 리듬, 신체를 시험하고 전시하려는 욕망, 색상, 소리 및 구호의 복원 또는 몰입을 통한 "증강된" 현실의 꿈, 그리고 마침내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이 이 전시의 컨셉이라고 한다.



이 전시회에는 Gustave Caillebotte, Loïe Fuller, Léon Gaumont, Jean Léon Gérôme, Alice Guy, Auguste, Louis Lumière, Jules Etienne Marey, Georges Méliès, Claude Monet, Berthe Morisot, Charles Pathé, Henri Rivière를 포함하여 Pierre Bonnard에서 Auguste Rodin에 이르기까지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진 예술가들의 300개의 작품 및 영화가 함께 제공된다.



전시의 첫 도입부에서는 피그말리온 신화와 감독 사이에 연결 고리를 설명했는데 그 분석이 상당히 공감되고 놀라웠다. 먼저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많이 들어봤을 신화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갈라테아라는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든 후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아프로디테에게 자신이 만든 것 같은 그런 완벽한 아내를 찾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그의 조각품에 입맞춤을 하면 조각품이 살아난다는 내용이다. 감독이 만든 영화는 기적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조각품을 보여준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시네마토그래프는 이미지에 생기를 불어넣고 이전의 어떤 기술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삶을 재현하고 무생물의 움직임에 매력과 이미지에 생명을 구현하려는 이 욕망을 감독이 표현한 것이다. 지금은 영화가 이미 대중적이고 현대적인 예술로 자리 매김하고 있어서 영화의 탄생이 이런 혁명적인 기술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기 때문에 새삼 놀라운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탄생한 도시 파리를 보여주는 그림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도시적 변형, 도로 교통의 증가, 여행의 민주화, 철도 차량의 속도 경험 등 이 모든 것이 세계를 보고 느끼는 기존의 방식을 깨뜨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움직임을 보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에 발코니에 있는 부르주아의 옷, 대로의 유모차 또는 구경꾼의 옷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그들은 새로운 관점과 구경꾼을 만들어내며, 이는 영화 감독이 카메라에 담기 위해 채택하게 된 것이라고 규정했다. 도시는 그 자체로 풍경이 되며 매력적인 상점 창, 컬러 포스터, 거리 공연자들과 함께 지나가는 사람들,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모든 것이 다 작품속에 등장할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관음증 표현의 도구로 사진과 영화를 활용했다. 열쇠 구멍, 화면의 창, 망원경 등을 통해 알몸의 여성 모델을 훔쳐보는 남성을 보여준다. 역시 이 곳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제격이라 그런지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 나 또한 열심히 보긴 했다.. 



프랑스에서 영화는 ' 제 7의 예술' 이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사진 기록, 이미지 애니메이션 및 영사 기술을 다양한 정도로 결합하고 학술 예술(회화, 연극, 현대 음악)의 레퍼토리를 활용하고 장르(동화, 트릭 영화, 만화, 재구성된 뉴스, 만화적 관점, 추격전, 서부극, 연재물, 멜로드라마, 예술 영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몽타주의 내러티브 자원을 활용함으로써 예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카테고리에 든 것이다. 


최초 영화 제작사인 파테 (pathé) 시네마의 옛날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신기했고 밑에 사진 속 제롬 세이두(제홈 세두)- 파테는 유명한 프랑스 배우 레아 세이두의 할아버지라고 한다. . 



영화와 관련된 전시는 처음 보아서 나에겐 새로운 발견임과 동시에 흥미로웠는데 영화 전공자 친구가 말하길 La Cinémathèque française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가면 이것보다 더 자세하게 영화사를 알 수 있고 희귀영화자료도 볼 수 있다고 알려주며 다음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서 "오 그래? 좋지! 넌 가봤어?" 라고 되물어봤더니 " 난 맨날 가지! " 라며 지갑 속의 시네마테크 회원증을 보여주었다. ㅋㅋ 


++그리고 Signac collectionneur


오르세에서 동시 진행중인 기획 전시도 있어 오늘 같이 소개한다.


시냑 컬렉션은 19세기 당대의 예술계에서 특히 활발하게 활동했던 작가의 시각과 편견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교과서라 할 수 있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시냐크는 인상파 화가들, 특히 클로드 모네, 에드가 드가, 귀스타브 카유보트, 아르망 기욤 등의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화풍을 완성해갔다. 시냑의 다음 세대에서 그의 색에 대한 열정을 통해 Kees Van Dongen, Henri Matisse, Charles Camoin 및 Louis Valtat에게 영향을 끼쳐 신인상주의에서 야수파(fauvism)로 이어지게 했다는 점에서 최근에 재조명되는 화가이다. 이 전시에서는 시냑뿐만 아니라 그가 영향받은 다양한 화가들의 그림도 볼 수 있고 점묘화로 널리 알려진 쇠라도 있다. 



쇠라의 점묘법을 캡션 옆에 귀엽게 돛단배로 그려둔 센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 사진 원본은 https://blog.naver.com/mangchiro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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