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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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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웨스 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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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9일 - 7월 27일
Cinémathèque française : Wes Anderson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영화 예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존하고 조명하는 세계적인 영화 기관이다. 1936년 앙리 랑글루아(Henri Langlois)에 의해 설립되어, 영화 필름과 관련 자료의 수집, 복원, 보존, 상영, 연구를 아우르고 있다. 파리 12구에 위치한 현재의 건물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했으며, 박물관·아카이브·상영관·전시장 등을 갖춘 복합적인 문화 공간이다. 고전 영화에서 실험 영화, 작가주의 영화(감독의 개성과 세계관이 영화 전반에 뚜렷하게 드러나는 예술적 자율성을 중시하는 영화)까지 경계를 넘나드는 기획전과 회고전을 꾸준히 선보이며 영화라는 예술 형식의 심층적인 사유가 일어나는 지적 공간이자 세대를 넘어 영화인과 관객이 만나는 살아있는 아카이브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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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inémathèque françaisePhoto: Han Jisoo  

프랑스 시네마테크가 한 세기 동안 수집해온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 컬렉션과, 2004년 프랑스국립영화영상센터(CNC)가 대규모로 인수한 귀중한 아카이브가 한데 모였다. 새롭게 문을 연 시네마테크의 박물관은 이 방대한 유산을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하며 영화사 초기의 상상력과 기술이 어떻게 오늘날의 시각 효과와 서사에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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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inémathèque françaisePhoto: Han Jisoo  

전시는 800㎡ 규모의 공간에 구성됐으며, 멜리에스가 활동했던 몽트뢰유에서부터 할리우드까지 이어지는 영화사의 흐름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연출됐다. 전시의 중심에는 멜리에스의 대표작과 미공개 필름을 비롯해 300여 점의 장비, 의상, 포스터, 드로잉, 모형들이 배치되어 있다. 여기에 150여 장의 희귀 사진과 최신 가상현실(VR) 기술까지 더해져, 고전과 첨단을 넘나드는 독특한 몰입 경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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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inémathèque françaisePhoto: Han Jisoo  

조르주 멜리에스는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과학과 마술을 결합한 그의 상상력은 장 콕토(Jean Cocteau)와 조르주 프랑쥬(Georges Franju)가 말한 영화적 초현실주의의 기원이 되었으며,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 조지 루카스(George Lucas),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 팀 버튼(Tim Burton) 등 수많은 현대 감독들이 그의 영향력을 공개적으로 언급해왔다.


dafa37563bb9afc17eb96db810023daa_1751976451_7041.jpg ⓒ Cinémathèque françaisePhoto: Han Jisoo  

감독이자 각본가, 배우이자 무대 디자이너, 프로듀서이자 배급자였던 멜리에스는 광학 트릭, 정지 촬영, 디졸브, 모형 애니메이션, 오버랩 인화, 색채 연출, 음향 효과, 서사 기법 등 영화적 표현의 거의 모든 장르와 기술을 실험하며 발전시킨 완전한 창작자였다. 자신만의 실험실과 스튜디오까지 직접 운영하며 영화라는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넓혀갔다.


dafa37563bb9afc17eb96db810023daa_1751976458_9695.jpg  ⓒ Cinémathèque françaisePhoto: Han Jisoo  

시네마테크 박물관의 상설전시는 멜리에스의 작품 세계를 단순한 기술적 기여로 환원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어떻게 ‘달 세계 여행’의 감독이 되었으며, 그의 독특한 세계관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오늘날까지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전시는 관람객에게 그에 대한 해답을 단정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스스로 탐색해 나가도록 유도하며 영화사 속 상상력의 뿌리를 재조명한다.


dafa37563bb9afc17eb96db810023daa_1751976466_299.jpg ⓒ Cinémathèque françaisePhoto: Han Jisoo  

멜리에스 전시는 영화라는 매체의 기원과 그 진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아카이브로서 인상 깊었다. 19세기 후반의 원시적인 장비와 기술이 어떻게 상상력과 결합해 하나의 시각 예술로 발전했는지, 그 과정을 물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조였다. 300여 점이 넘는 장비, 소품, 사진, 필름을 통해 멜리에스가 영화의 서사 구조는 물론 기술적 장치를 어떻게 선도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dafa37563bb9afc17eb96db810023daa_1751976483_7492.jpg ⓒ Cinémathèque françaisePhoto: Han Jisoo  

전시장은 마법의 실험실에 들어선 듯, 영화가 탄생했을 때부터의 환상을 기술로 구현해냈다. 손으로 돌린 카메라, 직접 칠한 필름, 작은 기계 장치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상상력과 손재주는 감탄을 넘어 경외감마저 불러일으켰다. 현대 영화의 특수효과, 세트 디자인, 미장센(mise-en-scène)까지 그 모든 기원이 멜리에스에게 닿아 있다는 사실은 새삼 놀라웠고 기술이 진보해도 상상력의 원천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단순하고 고집스러운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dafa37563bb9afc17eb96db810023daa_1751976500_4733.jpg ⓒ Cinémathèque françaisePhoto: Han Jisoo  

한편 프랑스 시네마테크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 전시를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자타공인 기이한 탐미주의자로 불리는 앤더슨 감독의 초기 커리어부터 최신작까지를 아우르며, 1990년대 자생적으로 감독 데뷔를 이룬 바틀 로켓 (Bottle Rocket, 1996)부터, 전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2014)과 애스터로이드 시티 (Asteroid City, 2023)에 이르기까지 그 궤적을 세밀하게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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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némathèque françaisePhoto: Han Jisoo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형식적 완결성과 반복되는 연출 기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물화 같은 구도, 완벽한 대칭, 그래픽적 공간 구성, 단절된 컷 편집, 시적인 대사, 음악의 적극적 활용, 그리고 필름에 대한 일관된 고집 등이 그 예다. 전시는 이러한 형식미가 어떻게 일관된 협업 구조 속에서 구축됐는지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로버트 예오먼(Robert Yeoman, 촬영감독), 로만 코폴라(Roman Coppola, 공동 각본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Alexandre Desplat, 음악), 아담 스톡하우젠(Adam Stockhausen, 미술감독) 등 핵심 창작진과의 오랜 협업이 그 중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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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némathèque françaisePhoto: Han Jisoo  

전시에서는 로얄 테넌바움 (The Royal Tenenbaums, 2001)의 쓸쓸한 유머, 프렌치 디스패치 (The French Dispatch, 2021)의 단편적 서사, 판타스틱 Mr. 폭스 (Fantastic Mr. Fox, 2009)와 개들의 섬 (Isle of Dogs, 2018)의 스톱모션 기법 등, 감독 고유의 미학이 어떻게 장르를 넘나들며 구현됐는지를 보여준다. 허구의 지명과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는 스튜디오보다 실제 장소를 재조합해 이야기에 감정을 입히는 방식으로 현실을 활용해왔다. 이 과정에서 수백 개의 오브제가 디자인되고 제작됐으며, 앤더슨은 초기부터 이 작업들을 체계적으로 보관해왔다.


dafa37563bb9afc17eb96db810023daa_1751976529_2778.jpg ⓒ Cinémathèque françaisePhoto: Han Jisoo  

전시는 이러한 실물 아카이브를 최초로 일반에 공개한다. 손으로 도색된 다즐링 주식회사 (The Darjeeling Limited, 2007) 기차 모형,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의 책 표지 디자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등장하는 명화 사과를 든 소년(Boy with Apple), 스톱모션 인형들, 사이먼 바이스의 미니어처, 그래픽 디자이너 에리카 도른의 작업물, 그리고 오스카 수상 경력의 의상 디자이너 밀레나 카노네로의 의상 등이 포함됐다. 이 오브제들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창작과 제작의 흔적을 간직한 살아 있는 영화의 일부로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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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inémathèque françaisePhoto: Han Jisoo  

이번 전시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 속 사물이 전시장에 재배치되며 또 하나의 미장센을 구성하고, 아카이브 문서와 스토리보드, 직접 쓴 노트와 드로잉 등은 그가 기존 영화 산업의 규범에서 벗어나 어떻게 독립적인 창작 세계를 구축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웨스 앤더슨이라는 독자적 작가주의 감독이 어떻게 동시대 영화 문법을 재정의해왔는지 그 비밀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드문 기회이다.

 dafa37563bb9afc17eb96db810023daa_1751976671_1491.jpg  ⓒ Cinémathèque françaisePhoto: Han Jisoo  

웨스 앤더슨 전시는 개인적으로는 감흥이 크지 않았는데 아마도 그의 영화를 거의 보지 않은 상태에서 방문했기 때문인듯하다. 디테일 중심의 설치물이나 소품의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긴 어려웠다. 전시의 구성은 잘 짜여 있었고 앤더슨 특유의 작품관과 스타일을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시 자체의 완성도는 높았지만, 사전 이해 없이 접근하기엔 다소의  거리감이 있었다.  감독의 세계를 미리 알고 전시장에 들어갔다면 ‘훨씬 풍성한 감상을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dafa37563bb9afc17eb96db810023daa_1751976680_6047.jpg ⓒ Cinémathèque françaisePhoto: Han Jisoo  

그럼에도 영화라는 장르가 단순한 영상 소비를 넘어, 기술과 미술, 문학, 음악이 총체적으로 작동하는 복합 매체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멜리에스에서 시작된 상상력의 계보가 웨스 앤더슨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전시의 구조적 연결 또한 신선했다. 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한 공간에서 조망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전시였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 학사,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마쳤다. 갤러리자인제노에서 파리 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도슨트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문화예술신문 아트앤컬쳐에서 에디터로서 다양한 리뷰를 제공하고, 프리랜서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한인유학생회의 창립멤버이며 프랑스 교민지 파리광장에 문화 및 예술 관련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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