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립미술관 : 가브리엘레 뮌터-우회 없이 그리다//마티스와 마르그리트-한 아버지의 시선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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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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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립미술관 : 가브리엘레 뮌터-우회 없이 그리다//마티스와 마르그리트-한 아버지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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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4일 – 8월 24일 //2025년 4월 4일 – 8월 24일


Musée d’Art Moderne de Paris : Gabriele Münter- Peindre sans détours// Matisse et Marguerite-Le regard d’un père


 

파리 16구에 위치한 파리 시립미술관은 20세기와 21세기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약 15,000점의 작품을 소장한 유럽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관 중 하나다. 1937년 세계박람회에 맞춰지어진 팔레 드 도쿄 바로 옆에 자리잡아 피카소, 마티스, 샤갈 등 거장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현재 이곳에서는 두 개의 특별 전시가 진행 중인데, 하나는 독일 표현주의의 선구자 가브리엘 뮌터의 첫 프랑스 회고전으로, 150여 점의 회화와 사진, 자수 작품을 통해 그녀의 예술 여정을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앙리 마티스가 장녀 마르그리트를 모델로 삼아 그린 110점 이상의 작품을 통해 아버지의 애정과 예술적 실험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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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먼저 독일 출신 화가 가브리엘레 뮌터(Gabriele Münter, 1877–1962)를 조명하는 프랑스 최초의 회고전을 관람했다. 이번 전시는 회화, 판화, 사진, 자수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 약 170점을 통해 뮌터의 60여 년에 걸친 예술 여정을 시간 순으로 조망하고, 20세기 미술사에서 그녀의 중요성을 되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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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뮌터는 뮌헨의 예술 화풍 ‘청기사파(Der Blaue Reiter/Le Cavalier Bleu)’의 공동 창립자로,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여성 예술가 중 한 명이다. 남성이 지배하던 예술계에서 그녀는 60년에 걸친 삶 동안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일구어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연인이자 동료였던 칸딘스키와 늘 연관되어 언급되지만, 뮌터는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며 놀라운 현대성을 보여주는 풍요롭고 다양한 예술세계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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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여행을 즐기며 독립적으로 살아간 예술가였던 그녀는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고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소명을 키워 나갔다고 한다. 전통적인 미술 아카데미의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1902년 뮌헨의 팔랑크스 미술학교에 등록했고, 그곳에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그녀의 연인이자 동료였으며, 1916년까지 함께하며 뮌헨 전위 예술 운동의 중심이 된 뮌헨 신예술가협회(1909년)와 청기사파(1911년)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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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청기사파의 예술가들은 민속 예술과 아이들의 그림을 현대 예술을 되살릴 수 있는 독창적이고 진정성 있는 표현으로 보았다. 뮌터는 남부 바이에른 지방의 유리 밑화(Fixés sous-verre)와 같은 전통적이고 토착적인 물품들을 수집했고 그 기법을 익혀 자신만의 모티프로 재해석했다. 또한 신앙의 상징으로 쓰인 작은 조각상들도 수집하여 독창적인 정물화의 소재로 다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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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이번 전시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뮌터의 예술 세계를 소개한다. 여정은 그녀의 예술 경력의 시작을 알리는 사진들로부터 시작되는데, 1898년부터 1900년까지의 미국 여행과 1905년의 튀니지 여행에서 촬영한 이 사진들은 놀라울 만큼 실험적이고 시각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또한 그녀의 1906-1907년 첫 파리 체류기 동안 제작된 판화 작업을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파리 아방가르드, 특히 야수파와의 조우로 특징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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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그 다음은 1908년부터 1914년까지, 뮌헨의 전위 미술 운동 속에서 그녀가 창작한 표현주의 시기의 대표작들이 소개된다. 세월이 흐르며 뮌터는 민속적 표현 양식과 아동미술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칸딘스키와 함께 250점이 넘는 아동 그림을 수집하였고, 그 중 일부는 청기사 연감(Almanach du Cavalier Bleu)에 수록되었다. 뮌터는 이 어린이 작품들 중 몇 점을 따라 그리거나 재해석하였는데, 이는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다시 훈련하고 새롭게 하기 위한 ‘탈배움(désapprentissage)’과 갱신의 과정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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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1929-1930년 두 번째 파리 체류기 동안 나타난 그녀의 스타일 변화가 당시의 새로운 구상미술 흐름과의 연결을 드러낸다.  그리고 전시는 193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말까지의 주요 작품들과 함께 마무리된다.   삶 전체를 바쳐온 그녀의 끈질긴 예술적 몰입과 일관된 헌신을 보여준다. “나는 우회 없이 그리고 싶었다. (peindre sans détours)” 라고 말했던 그녀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예술적 태도를 보여주는 한마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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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그녀의 회화의 고전적 주제들을 대담한 구도와 화면 구성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선과 윤곽선의 조형적 유희를 통해 형태를 단순화하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그녀의 초상화와 풍경은 일상적인 인물과 장소를 다루면서도 거의 상징적이고 시적인 강렬함을 띤다. 정물화에서도 뮌터는 원근법과 빛의 활용을 통해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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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개인적으로 그녀가 남긴 그림들은 어딘가 정직하고 담백했다. 색은 분명 아름다웠고 형태는 간결했으며, 몇몇 장면은 일기처럼 다정했다. 하지만 그 부분들이 나에게 예술적 전율로 이어지진 않았다. 바라는 것이 없고, 과장도 없고, 의도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도 없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격렬함의 부재 덕분에 일상과 풍경, 사물과 관계를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질 수 있었다. 삶을 견디기 위해 예술을 곁에 두고 살아낸 사람처럼 그녀의 예술은 은근하고 사려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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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다음 전시로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인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회화, 드로잉, 판화, 조각, 도자기 등 110점이 넘는 작품을 통해, 마티스가 자신의 장녀 마르그리트 뒤튀-마티스(Marguerite Duthuit, 1894–1982)를 바라본 예술가이자 특히 ‘아버지’로서의 시선을 조명한다. 마티스의 예술을 가장 사적이고도 내밀한 시선에서 들여다보게 하는 흥미로운 전시이다. 마르그리트는 대중에게는 다소 드러나지 않았던 존재인데, 이번 전시에서는 처음 공개되는 수많은 드로잉들과 진자료와 아카이브 문서, 마르그리트 본인이 직접 그린 작품을 통해 그녀를 다각도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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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앙리 마티스가 그려낸 수많은 얼굴들 가운데 유독 특별한 감정을 머금은 하나의 얼굴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의 딸, 마르그리트의 것이다. 마티스는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백 점이 넘는 초상화를 남겼다. 마르그리트 마티스는 그의 가장 소중한 모델이었으며, 여러 시기에 걸쳐 그의 예술 세계에 자리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년 시절의 첫 이미지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마르그리트는 마티스 작품에서 가장 꾸준히 등장하는 모델이었다. 아버지가 그려낸 딸의 초상화들은 놀라운 솔직함과 강렬함을 담고 있으며, 마티스가 그녀에게 품은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마티스는 딸을 일종의 자기 반영적 존재로 보았다. 그래서 그녀를 그리는 순간에야 비로소 자신이 늘 갈망해온 화가와 모델 사이 거의 완전한 동일시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여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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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전시는 딸의 성장 과정과 삶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게끔 시간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티스와 딸 사이의 강한 유대와 상호 간의 깊은 신뢰, 존중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마르그리트는 마티스의 세 자녀 중 장녀로, 1894년 마티스가 화가 지망생이던 시절 모델이었던 카롤린 조블로와의 관계에서 태어났다. 이후 마티스가 결혼한 아내 아멜리와의 사이에서 얻은 장남 장(Jean, 1899–1976), 차남 피에르(Pierre, 1900–1989)와 함께 성장했다고 한다. 마르그리트는 훗날 이 단단한 가족 공동체를 두고 “우리는 다섯 손가락처럼 하나였다(Nous sommes comme les cinq doigts de la main)”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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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어린 시절 마르그리트는 건강이 좋지 않아 일곱 살 때 기관절개 수술을 받았고, 오랜 기간 검은 리본으로 흉터를 가렸다. 이 리본은 그녀가 등장하는 많은 초상화에서 중요한 특징으로 남아있다. 건강 문제로 일반적인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기에, 마르그리트는 자연스레 화실의 아이가 되어 아버지 작업 현장을 매일 지켜봤다. 그렇게 그녀는 아버지의 실험적 예술에 인내심을 갖고 동참하는 참된 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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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그녀는 아버지의 가장 과감한 실험에도 주저 없이 동참했으며, 그 누구보다도 그로 하여금 기존의 틀을 내려놓고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들이게 해주었다. 부녀 사이의 깊은 공감과 신뢰에서 마티스의 가장 아름답고도 급진적인 작품들이 태어났던 것이다. 마티스는 그 속에서 자애롭고 섬세한 보호자로, 병약한 딸을 향한 깊은 애정을 품은 부모로 비춰지기도 하고, 후에는 생의 위험을 무릅쓰고 레지스탕스로 헌신했던 쉰 살의 여성에 대한 경외심 가득한 시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마르그리트는 아버지에게 변화무쌍한 얼굴을 내민다. 반항적인 표정으로 얌전하게 눈을 내리깔던 소녀는 어느새 강렬한 눈빛의 당당한 소녀로 성장한다. 이 두 초상화는 어린아이에서 젊은 여성으로 넘어가는 그 미묘한 경계를 포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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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또한 전시 말미에는 가족 대상 교육 프로그램과 창의적 워크숍도 마련되어 있다. 다양한 놀이와 독서 공간이 있어 아이와 어른이 함께 자유롭게 창의적인 시간을 나눌 수 있어서 전시를 보고 즐기고 여운을 가져가기에 아주 적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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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아버지의 시선으로 딸의 생애를 붓끝에 담아낸 그림을 본다는 것은 한 예술가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고도 섬세한 선물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흔히 마티스를 떠올릴 때는 색채의 혁명가, 형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대담한 혁신가의 면모가 먼저 다가오지만 이번 전시에서 마티스는 아버지라는 역할을 통해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가 딸 마르그리트에게 바친 수많은 초상화들은 단순한 그림을 넘어 시간과 감정을 함께 짜내어 담은 기록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애정과 사랑, 그리고 끊임없는 대화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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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마티스가 딸을 향한 시선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녀의 얼굴과 내면을 포착하는 과정은 그의 예술 세계를 재해석하게 만든다. 아버지 마티스가 그려낸 섬세함과 진실성은 인간적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더불어 마르그리트라는 아버지의 예술적 동반자였고, 그가 예술적 실험에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었다. 아버지와 딸 사이의 깊은 신뢰와 존중은 그 어떤 추상적 해석보다 생생하게 작품을 통해 전달된다. 이 점이야말로 전시가 가진 진정한 힘이자 감동의 근원이었다. 한편으로는 나는 과연 우리 아버지에게 어떤 얼굴로 기억될까 싶은,,, 불효녀의 조용한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 학사,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마쳤다. 갤러리자인제노에서 파리 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도슨트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문화예술신문 아트앤컬쳐에서 에디터로서 다양한 리뷰를 제공하고, 프리랜서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한인유학생회의 창립멤버이며 프랑스 교민지 파리광장에 문화 및 예술 관련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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