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띠 팔레 : 보석 드로잉-창조의 비밀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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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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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 팔레 : 보석 드로잉-창조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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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1일-7월 20일

Petit Palais : Dessins de bijoux - Les secrets de la création


샹젤리제 인근에 자리한 쁘띠 팔레(Petit Palais)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소규모 궁전으로, 현재는 파리 시립 미술관으로 운영되며 고대부터 19세기까지의 회화, 조각, 공예품 등을 소장하고 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화려한 건축미, 대리석 회랑과 중앙 정원은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거장들의 작품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 손꼽힌다. 모네, 쿠르베, 세잔 등의 회화는 물론, 아르누보 양식의 장식 예술과 중세 금세공품 등 폭넓은 수집품을 갖춘데다 중앙의 정원과 회랑, 햇살이 머무는 조용한 안뜰은 도시의 소란에서 벗어나 숨을 고를 수 있는 예술의 쉼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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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tit Palais: Dessins de bijouxPhoto: Han Jisoo  

<보석 드로잉: 창조의 비밀 >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이 박물관의 풍부한 보석 드로잉 컬렉션을 공개한다. 이 컬렉션은 박물관 소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것으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100년이 넘는 창작의 역사를 아우른다. 5500점이 넘는 작품 중 특별히 선별된 드로잉을 통해 그 다양성과 방대한 규모를 보여준준다. 이 컬렉션은 빛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금까지 비공개로 보관되어 왔다고 한다. 피에르-조르주 드레임(Pierre-Georges Deraisme), 샤를 자코(Charles Jacqueau) 등 디자이너들의 작품과 부쉐롱(Boucheron), 까르띠에(Cartier), 랄리크(Lalique), 루브나(Rouvenat), 베베르(Vever) 같은 명망 높은 하우스의 디자인을 통해 장신구 디자인의 스타일과 기법의 진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d55363331620e48a32bbf8b5a3dcf6c0_1750222235_3613.jpg ⓒ Petit Palais: Dessins de bijouxPhoto: Han Jisoo  

이번 전시는 네 개의 주요 섹션으로 구성되어, 보석 드로잉의 전체적인 창작 과정을 조망할 수 있다. 드로잉의 영감의 원천, 창작의 기원, 기법 등을 통해 단순한 작업 도면 그 이상으로서의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드로잉이 갖는 제작·상업적 기능과 보석 완성과의 관계까지 탐색한다. 마치 창작의 이면에 자리한 공방을 직접 들여다보는 듯한 여정을 관람객에게 제공하며 보석 디자이너들의 상상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d55363331620e48a32bbf8b5a3dcf6c0_1750222270_601.jpg ⓒ Petit Palais: Dessins de bijouxPhoto: Han Jisoo  

디자이너들은 자연 관찰뿐 아니라 여러 시대와 지역의 장식 문양을 담은 장식 도안집에서 영감을 얻었다. 드로잉의 창작을 향한 첫걸음은 자연과 장식 예술로부터의 관찰이었던 것이다. 식물과 곤충을 과학적 정밀함으로 관찰했으며, 그들의 드로잉은 자연을 환상적으로 재구성한 결과물로 이어진다. 디자이너들은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모티프를 해체하고 변형함으로써 더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언어를 만들어 냈다. 이는 디자이너들이 과거의 유산을 개인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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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tit Palais: Dessins de bijouxPhoto: Han Jisoo  


두 번째 섹션은 기술적 정밀함과 예술적 감각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드러낸다. 스케치에서 실물 크기의 컬러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보석이 만들어지는 여러 단계를 보여준다. 특히 채색된 매혹적인 드로잉들은 아르 누보와 아르 데코의 매력을 강조하는데, 프랑스 고등 보석 학교(Haute École de Joaillerie)에서 제작한 영상은 작가들의 정밀하고 시대를 초월한 손놀림과 장인 정신을 조명하고 있다.



 d55363331620e48a32bbf8b5a3dcf6c0_1750222318_2733.jpg ⓒ Petit Palais: Dessins de bijouxPhoto: Han Jisoo  

 

한편, 보석 드로잉은 단순한 아이디어 스케치를 넘어 매우 구체적이고 정교한 기술 문서이다. 대부분 실물 크기로 그려지며 색상은 특정 보석이나 금속을 나타낸다. 드로잉은 제작자 간의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이며, 공방 내부에서 수시로 돌려보며 제작의 기준점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보석 드로잉은 전통적으로 서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작가의 정체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직접 공방에서 훈련받은 장인으로, 디자인과 제작의 이중 역할을 수행했다. 따라서 보석 드로잉은 예술성과 기능성을 모두 갖춘 복합적 매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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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tit Palais: Dessins de bijouxPhoto: Han Jisoo  


세번째 섹션에서는 보석 한 점이 수많은 장인의 협업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보석은 진정한 협업의 산물이며 디자이너, 조각가, 조세공, 드릴공, 에나멜 장인, 보석세공사, 실 꿰는 장인, 연마사 등 수많은 장인의 손길이 모여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보석 드로잉과 함께 완성된 보석을 나란히 배치하여, 종이 위의 구상이 어떻게 금속과 보석의 형태로 구현되는지를 보여준다. 각 손길의 정교함과 창작 과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d55363331620e48a32bbf8b5a3dcf6c0_1750222351_7379.jpg ⓒ Petit Palais: Dessins de bijouxPhoto: Han Jisoo  

 

오늘날 보석 드로잉은 단순한 제작 도면을 넘어서, 역사적 기록이자 창작의 원천으로 인정받고 있다. 마지막 섹션은 이러한 드로잉들이 시대를 초월해 어떻게 그 역할을 지속하는지를 성찰하도록 이끈다. 드로잉들은 때로는 고객에게 제안서로 제시되며, 때로는 제작 후의 공식 문서로 남아 작가와 메종의 활동을 증명한다. 실물 보석보다 훨씬 오래 남을 수 있는 보석 드로잉은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법적·문화적 유산으로서의 중요성도 지니고 있다. 쁘띠 팔레 소장품 중 잘 공개되지 않는 보석들과, 이를 착용한 우아한 여성들의 초상화를 함께 배치하면서 전시는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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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tit Palais: Dessins de bijouxPhoto: Han Jisoo  

 

화려한 보석들을 눈앞에서 마주하리라는 기대는,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빗나갔다. 대신 맞이한 것은 보석이 되기 전, 아직은 연필과 잉크로 그려진 선들의 세계였다. 반짝이고 화려한 보석을 만나 볼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유리 케이스 너머 펼쳐진 건 보석이 아닌 그 탄생 이전의 상상이었다. 그러나 섬세하게 그려진 데생 속에는 장인의 숨결과 디자이너의 욕망 그리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계에 대한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나의 주얼리가 태어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의 고민과 조율, 반복되는 스케치와 상상이 필요했는지 그 과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보석 그 자체를 바라보는 것보다 더 깊은 감동을 주었다.


d55363331620e48a32bbf8b5a3dcf6c0_1750222376_8709.jpg ⓒ Petit Palais: Dessins de bijouxPhoto: Han Jisoo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우리가 지금도 이름을 알고 있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보석 브랜드들의 오래된 스케치들을 통해 그 시대의 미적 감각과 트렌드를 엿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시대와 감성, 사회적 지위까지 투영된 이 작은 화려한 것들을 통해 완성보다 과정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는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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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tit Palais: Dessins de bijouxPhoto: Han Jisoo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 학사,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마쳤다. 갤러리자인제노에서 파리 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도슨트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문화예술신문 아트앤컬쳐에서 에디터로서 다양한 리뷰를 제공하고, 프리랜서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한인유학생회의 창립멤버이며 프랑스 교민지 파리광장에 문화 및 예술 관련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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