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중 문화재 보존 복원가, 한지 작업실: 루브르가 선택한 천년의 종이, 한지의 현재와 미래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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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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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중 문화재 보존 복원가, 한지 작업실: 루브르가 선택한 천년의 종이, 한지의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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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마레 지구에 위치한 김민중 문화재 보존 복원가의 한지 작업실은 한지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김 복원가는 천년의 역사를 지닌 한지의 우수성을 프랑스 땅에 알리고 있다. 그의 작업실은 한지 홍보 공간을 너머 루브르를 비롯한 프랑스 주요 박물관들이 긴급한 복원 작업이 필요할 때 언제든 최상의 한지를 공급할 수 있는 전략적 보관소이기도 하다.

김민중 문화재 보존 복원가는 프랑스 복원계에서 활동 중인 전문가로, 오랜 시간 일본 종이를 사용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지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원래 우주산업 분야를 전공한 공학도였던 김 복원가는 2007년 직지와 의궤에 일생을 바친 고 박병선 박사의 비서로 일하며 문화재 세계에 발을 들였다. 공학 전공인 그는 재료에 대한 기본 지식과 이해도가 높아 복원학을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2011년 박병선 박사 타계 후 본격적으로 복원학을 전공, 2015년 루브르 박물관 복원팀에 합류했다. 한지를 프랑스 복원계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그는 현재 '미래에서 온 종이' 협회를 운영하며 한지 홍보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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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Han Jisoo  


그의 설명에 따르면, 문화재 및 예술 작품의 보존 및 복원에서는 무엇보다 종이의 품질이 핵심이다. 복원은 결국 좋은 종이를 찾는 일이라며 그가 한지로 눈을 돌린 배경을 짚어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자체 생산한 종이가 내구성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내자 일본산 종이를 복원 작업에 본격적으로 도입하게 된다. 이후 일본 종이는 복원용 종이 시장의 99% 이상을 점유해왔다. 

그러나 최근 환경문제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화학재료를 사용한 종이의 문제점들이 부각되면서, 천연 재료로 만든 친환경 종이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주목받는 것이 바로 한국의 전통 한지다. 닥나무 자체도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관리되며, 줄기 전체가 아닌 가지만을 수확해 사용한다는 점에서도 환경적 가치가 있다. 특히 루브르 박물관은 복원 재료로 한국의 문경에서 제작된 한지를 선택한 바 있다. 김 복원가는 기존 종이로 해결할 수 없었던 부분을 한지가 가능하게 해준 부분이 결정적이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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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중 복원가의 작업실 ⓒ Photo: Han Jisoo  


일본에도 닥나무로 만든 종이가 있지만 한지와는 큰 차이가 있다. 김치가 그러하듯 땅과 기후, 만드는 손길과 공정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닥나무라 하더라도 일본 닥나무는 섬유가 부드러운 반면 한국의 닥나무는 섬유가 더 단단하고 생생한 성질을 지닌다. 토양과 기후의 차이가 원재료의 성질을 바꾸고, 이는 자연스럽게 제조 공정과 품질의 차이로 이어진다. 

김민중 복원가가 사용하는 한지는 문경 무형문화재 김삼식 장인의 작업을 거친 것이다. 닥나무를 채취해 찌는 과정부터 껍질을 벗기고 백피를 만들고, 잿물을 활용해 삶고 두드리는 일련의 공정은 모두 장인의 손끝에서 20여 단계에 걸쳐  완성된다. 특히 한국 전통 방식 중에서도 잿물로 닥나무 껍질 삶는 기술은 난이도가 높고 까다로운 기술이기에 현재는 거의 한국에서만 전승되고 있다. 일본은 공업화 과정에서 이러한 전통 기술들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고 한다. 전통 방식의 잿물은 약알칼리성을 띠며, 종이 제작 과정에서 섬유 외의 불필요한 물질을 효과적으로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지업체는 이 과정을 화학 약품에 의존해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종이의 산화를 촉진시켜 섬유를 약하게 만든다. 반면 전통 방식은 종이의 내구성과 보존성을 높여주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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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김삼식 장인의 한지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 ⓒ Photo: Han Jisoo  


이처럼 긴 시간과 정교한 과정 끝에 얻어지는 한지는 그 자체로 고유한 품질을 갖춘 문화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지는 11월부터 4월까지 약 4만 장 가량 생산된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며 투입되는 노력과 재료에 비해 완성품의 양은 적지만  그만큼 한 장 한 장에 담긴 가치는 귀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닥나무 섬유를 물에 풀어 건져내면서 사방으로 고르게 퍼지게 하는 과정은 오랜 경험과 섬세한 감각을 지닌 장인만이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기술이다. 뛰어난 손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공정이다. 다행히 김삼식 장인의 아들이 후계자로 이 기술을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AI 로봇을 활용한 자동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김 복원가의 파리 작업실에는 이 한지의 제작에 쓰인 실제 도구들과 닥나무 가지, 닥풀 (황촉규 식물) 등을 볼 수 있으며 유태근 작가가 한지로 만든 작품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유태근 작가의 작품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성모성지에 세워진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성당 내부 벽면에도 전시되어 있다. 문경 한지 454장에 옻칠과 밀랍으로 한 땀씩 작업해 세계 최대 크기의 한지 벽화를 완성시켰는데 스위스 거장 건축가의 기하학적 공간 설계와 조화를 이루며, 종교적 숭고함과 한국적 미감이 어우러진 독특한 공간을 창조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한지가 단순한 종이가 아닌 복원의 재료인 동시에 예술 작품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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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의 제작에 쓰인 실제 도구들과 닥나무 가지, 닥풀, 유태근 작가의 한지 작품 ⓒ Photo: Han Jisoo  



복원에 사용되는 한지는 구조적 안정성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반 종이는 수분에 의해 팽창과 수축이 일어나 복원 작업에 어려움을 주지만 한지는 수축과 팽창이 거의 없어 보존성이 높다. 즉, 복원 작업에서 종이가 팽창하거나 수축하면 접착력이 떨어져 복원 효과가 반감되는데 한지는 별도의 보완재 없이도 뛰어난 안정성을 담보한다.

또한 김 복원가는 한국에서 생산되는 두 종류의 종이 구분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일본 방식으로 만들어진 '쌍발 종이'와 한국 고유 방식의 '외발 종이'가 있지만 국내에서는 둘 다 한지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쌍발은 세로로만 해서 일직선으로 만든 종이인데 젓가락을 나란히 두고 실로 묶은 것과 같고 외발은 가로세로로 떠서 옷감 직물 같이 만든 종이라는 차이가 있다. 외발은 좌우 위아래 섬유가 섬세하게 짜여 조직이 치밀하고 견고해지기에 고급 복원에 적합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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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풀 (황촉규)을 기르는 김민중 복원가.  5월 29일 & 6월 22일 ⓒ Photo: Han Jisoo  


한편, 루브르 박물관에 한지 사용을 제안했을 때의 어려움은 상당했다. 복원계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며, 만약 새로운 재료나 기법으로 인해 소중한 문화유산에 손상이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복원가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지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인정받는 과정에는 전문적 확신과 함께 상당한 개인적 위험 부담이 수반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재료나 기법을 도입하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과 신중한 검증 과정이 필수적이었고 그렇게 한지가 처음 적용된 사례는 2017년 독일 황제 막시밀리언 2세의 책상 복원 작업이었다. 사용된 종이는 전주시에서 제작된 한지였다.

김 복원가는 한지의 가치를 보존하고 알리기 위한 협회 ‘미래에서 온 종이’를 설립하여, 한지를 문화재 복원에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그 가능성을 널리 보급하고 있다. 프랑스 박물관 관계자와 외국 복원가들이 한지 투어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면 그 여정을 직접 돕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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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Han Jisoo  


현재 한지 제작 전통 지식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추진 중에 있으며, 어린이 및 외국인을 위한 한지 체험 프로그램도 여러 박물관에서 개발중이다. 한지의 활용 범위는 이제 복원을 넘어 우주선 보호장비나 로봇을 제작하는데도 쓰인다. 한지를 가공한 가죽은 실제 가죽과 거의 구분되지 않을 정도이며  악기, 스피커, 조명,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실험되고 있다고 전한다. 

김민중 복원가는 예술 작품과 그 복원에 쓰인 종이를 함께 명시할 수 있다면 문화의 깊이를 더욱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제안에는 한지가 단순한 재료가 아닌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전통 종이의 개념을 초월해 보존과 예술, 교육 현장에서 다시금 의미를 찾고 있는 한지를 관광 상품으로까지 확장시킬 계획도 갖고 있다. 김 복원가의 이러한 노력을 통해 천 년을 이어온 우리의 전통 기술이 21세기 파리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한지가 문화와 기술, 환경을 아우르는 미래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 학사,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마쳤다. 갤러리자인제노에서 파리 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도슨트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문화예술신문 아트앤컬쳐에서 에디터로서 다양한 리뷰를 제공하고, 프리랜서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한인유학생회의 창립멤버이며 프랑스 교민지 파리광장에 문화 및 예술 관련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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