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델 박물관: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 존재의 직조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본문 바로가기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dc6844e799399dddb82e7941c1448de0_1729312633_4636.jpg
 


부르델 박물관: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 존재의 직조

본문

2025년 11월 20일-2026년 4월 12일
Musée Bourdelle: Magdalena Abakanowicz, La trame de l’existence


앙투안 부르델(1861–1929)은 오귀스트 로댕, 아리스티드 마욜과 동시대에 활동하며 강렬한 조형 언어를 발전시킨 프랑스의 대표적인 조각가다. 부르델 박물관은 그가 40년 이상 실제로 사용한 작업실과 생활 공간에 자리하며 그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의 사후, 부인과 딸의 헌신으로 1949년 박물관이 개관했고 주요 작업실과 조각 기법을 소개하는 공간은 오늘날까지 탁월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상설 컬렉션과 기획전이 진행되며, 현재 폴란드 출신으로 현대 조각과 섬유 예술의 선구자인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1930–2017)의 대규모 회고전을 선보이고 있다.


628761972fa6b864998c0dd8c0d97ee4_1768147599_3999.png
628761972fa6b864998c0dd8c0d97ee4_1768147601_9832.png
ⓒ Musée BourdellePhoto: Han Jisoo 

20세기 폴란드 미술계를 대표하는 주요 작가인 아바카노비치는 어린 시절부터 전쟁, 검열, 공산 정권이 초래한 결핍을 경험했다. 유기적 세계, 반복성, 기념비적 규모에서 영감을 받은 그녀의 작업은 강력한 힘과 존재감을 지니며 환경·인문·페미니즘 등 동시대적 문제들과 깊이 공명한다. 폴란드 공산 정권의 검열 속에서도 강렬하고 정치적이며 기념비적인 작품을 제작한 것이다. 


급진적이며 선구적인 작가였던 그녀의 작품은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서 꾸준히 소개되었고, 최근에는 런던 테이트 모던과 로잔 칸톤 미술관에서도 전시되었다. 부르델 박물관은 프랑스 최초의 대규모 전시를 통해, 전기적·정치적 맥락을 아우르는 연대기적·주제별 구성으로 작가의 세계를 조명한다. 전시는 조각 설치 33점, 섬유 작품 10점, 드로잉과 사진으로 구성된다. 

628761972fa6b864998c0dd8c0d97ee4_1768147859_8758.png
 
ⓒ Musée BourdellePhoto: Han Jisoo 

전시의 부제 ‘존재의 직조(la trame de l’existence)’는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정의할 때 사용한 두 개의 개념을 결합한 것이다. 그녀는 직물을 인간 신체의 가장 기본적인 유기체로 보았으며 이는 운명의 우연성과 변동에 의해 흔적을 남기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전시의 첫 부분은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의 방대한 작업 세계를 개괄적으로 보여준다. 초기 섬유 작품, 소형 조각(주로 해부학적 형태), 드로잉, 공공 공간을 위한 프로젝트가 소개된다. 그녀는 회화로 작업을 시작한 뒤 태피스트리로 옮겨가며, 곧 공예적·장식적 틀을 전복한다. 작가는 섬유 재료와 조각 고유의 기법을 결합한다. 그녀의 모든 작업은 ‘인간은 자신의 환경 속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628761972fa6b864998c0dd8c0d97ee4_1768147823_6791.png 
ⓒ Musée BourdellePhoto: Han Jisoo 

특히 「안드로메다  II (Andromède II)」(1964)는 신화의 서사를 해체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조건을 드러내는 조형이다. 안드로메다는 타인의 죄로 인해 바위에 묶여 제물로 내놓아진 인물이며, 이후 영웅 페르세우스에 의해 구원된다. 여기서 아바카노비치의 관심은 구조되는 인물이 아니라 묶여 있는 상태 그 자체에 놓인 인간이다. 이로써 작품은 영웅 중심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무력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전면에 드러낸다. 

이 묶임은 단순한 신체적 폭력이나 감금이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여되는 조건, 정치적 체제, 사회적 규범과 같은 구조적 구속을 의미한다. 작품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상황 속에 놓여 존재하게 되는 근본적 현실을 시각화하며 존재론적 차원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혹은 자유란 단지 구속의 형태가 바뀐 것에 불과한가라는 질문이 여기서 발생한다.


628761972fa6b864998c0dd8c0d97ee4_1768147809_9051.png
 
ⓒ Musée BourdellePhoto: Han Jisoo 


작가는 신체를 껍질과 구조, 물성의 틀로 해체하고 다시 직조하듯 구성하는 방식을 실험했다. 머리 없는 몸, 불완전한 팔다리, 섬유와 주트의 거친 질감은 훗날 그녀의 대표작인 ‘아바칸 (Abakans)’ 시리즈로 이어진다. 아바칸은 기존 태피스트리의 평면성과 장식적 기능을 넘어 공간 속에서 몸과 같은 존재감을 가진 조각적 섬유로 확장되는데 「안드로메다  II」가 바로 그 실험적 출발점이었다. 즉, 이 작품은 인간과 섬유, 형상과 공간, 개인과 집단을 엮는 그녀만의 직조적 언어를 형성하는 결정적 계기였다고 볼 수 있다.


628761972fa6b864998c0dd8c0d97ee4_1768147793_0225.png
ⓒ Musée BourdellePhoto: Han Jisoo 


전시는 아바카노비치가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연작 ‘아바칸’으로 이어진다. 천장에 매달린 이 거대한 섬유 조각들은 강렬한 시각적 존재감을 드러낸다. 극심한 재료 부족 속에서도 작가는 침대 아래에 접어 두었던 재활용 끈과 천을 사용해 자연 섬유로 이 작품들을 직조했다. 1969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제4회 국제 태피스트리 비엔날레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다. 벽에 거는 전통적 지지체에서 벗어난 지름 4미터의 붉은 아바칸은 모든 방향으로 펼쳐지며 태피스트리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전복했다.

공중에 떠 있고 지면에서 분리된 아바칸의 섬유 조각들은, 자신의 본성에 내재된 비밀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은폐한다. 틈과 주름이 풍부한 촉각적 외피는 다양한 유기적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가 살아간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된 아바칸의 탄생은 저항의 행위였다. 이 작품들이 품고 있는 공간은 문자 그대로 정치적 피난처로서, 아바카노비치는 그 안에서 억눌린 분노를 안고 영토의 직물과 역사의 실을 다시 잇는다.


628761972fa6b864998c0dd8c0d97ee4_1768147899_4817.png
ⓒ Musée BourdellePhoto: Han Jisoo 
 
전시의 세 번째 부분은 정체성 없는 껍질들에 주목함과 동시에 존재와 소멸의 문제를 질문한다. 1970년대에 들어서며 아바카노비치의 작업은 인간 형상으로 확장되고, '등'과 '춤추는 인물들'에서 발전된 반복성의 원리를 채택한다. 실제 인체를 본떠 뜬 몰드 내부에 황마 천을 띠 형태로 덧대고 수지와 접착제로 굳힌 것이다. 그 결과 피부나 나무껍질을 연상시키는 질감의 껍질이 만들어진다. 작가는 이 과정을 반복하되, 주름과 움푹 들어간 부분을 만들고 봉제선을 강조하거나 표면에 끈을 덧붙이며 각 형상을 개별화한다. 


628761972fa6b864998c0dd8c0d97ee4_1768147928_4976.png
ⓒ Musée BourdellePhoto: Han Jisoo 


네 번째 섹션은 198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공개된 대표적 설치 작품 「발생학(배아학) (Embryologie) 」로 시작된다. 인간이 되기 전, 사회가 되기 전, 존재가 형성되기 이전의 상태를 뜻하는 조형적 사유이다. 신체와 유기적 물질, 암석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이 코쿤 형태의 집합체는 관람자를 모호하고 혼종적인 공간으로 몰입시킨다. 현미경으로 관찰한 세포 덩어리, 조직, 혹은 피부처럼 보이는 이 형상들은 생명의 신비 속으로 시선을 잠기게 한다.「구성」 연작은 1981년에 제작되었다. 평평하게 놓인 종이가 천천히 회전하는 가운데, 잉크는 점차 두꺼워지고 경계를 형성한 뒤, 작가의 워시 기법에 의해 종이의 여백 위로 퍼져 나간다. 드로잉과 부조 작품「풍경」과 함께 구성된 이 섹션은 아바카노비치 작품의 물질성과 변형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강조한다.

628761972fa6b864998c0dd8c0d97ee4_1768147956_6433.png
ⓒ Musée BourdellePhoto: Han Jisoo 


아바카노비치는 식물이나 동물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간헐적으로 드로잉을 활용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그래픽 작업에 대한 실천을 본격적으로 강화한다. 목탄으로 제작된  「파리」 연작(1993–1994)은 죽은 파리나 번데기 상태의 파리를 관찰한 작업이다. 아바카노비치는 현미경으로 보듯 파리의 몸을 확대하여 그 내부 구조를 드러낸다. 이는 부패에 대한 불안이나 공포라기보다 유기적 현실에 대한 작가의 내장적이고 근원적인 호기심을 보여준다.

628761972fa6b864998c0dd8c0d97ee4_1768147975_1019.png 
ⓒ Musée BourdellePhoto: Han Jisoo 

이어서「돌연변이 (Mutants)」와 「군중 V」 연작을 마주하게 된다.「돌연변이」가 비결정적인 방식으로 공간을 점유한다면, 이름도 얼굴도 지워진 채 불안감을 조성하는 「군중 V」는 아바카노비치가 말한 ‘두뇌를 상실한 하나의 유기체로서 작동하는 군중’에 대한 사유를 물질화한다. 두 팔을 몸 옆에 붙인 채 서 있는 남성의 실제 신체를 몰드로 떠낸 뒤, 아바카노비치는 일련의 형상들을 제작한다. 석고 몰드 안에 수지를 흡수한 황마 천을 압축하는 이 제작 방식은 ‘눌림’ 자체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개인은 말 그대로 몰드에 맞춰 굴복한 형태를 취한다. 머리가 없거나, 때로는 팔마저 제거된 이 얼굴 없는 무리는 작가가 자신을 위협하거나 두렵게 느낀 세계와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세운 일종의 방어막처럼 기능한다. 이 형상들은 나쁜 기운을 막으려는 주술적 보호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628761972fa6b864998c0dd8c0d97ee4_1768147995_2396.png 
ⓒ Musée BourdellePhoto: Han Jisoo 


전시는 조각 연작 「전쟁의 놀이」로 마무리된다. 이 연작은 거대한 나무줄기를 강철 고리로 옥죄듯 감싼 형태로 구성되며, 전쟁의 파괴적 힘을 환기한다. 아바카노비치는 이 작업을 1987년부터 1995년까지 제작했는데, 이는 공산 정권이 균열을 일으키고 새로운 정치·사회 질서가 형성되던 시기와 맞물린다. 연작 제목에 담긴 제목에서 느껴지는 어색한 모순은 작품의 재료 조합에서도 반복된다. 세포적이고 유기적인 성격의 나무는 차갑고 비인격적인 금속과 대립하며, 생명과 폭력, 자연과 통제 사이의 긴장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628761972fa6b864998c0dd8c0d97ee4_1768148017_3888.png
ⓒ Musée BourdellePhoto: Han Jisoo 

개인적으로 아바카노비치가 회화나 전통 조각으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인간의 불완전함과 집단 속에서 사라지는 개인의 모습을 섬유라는 재료로 풀어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완전한 신체를 갖고 있지 않거나 머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결핍 속에서 오히려 인간 존재의 무력함과 동시에 그 안에 잠재된 긴장과 생생함을 감각할 수 있었다.

그녀의 작품 속 실과 직조는 삶과 시간, 역사와 개인이 얽힌 구조를 보여주는 장치였고 늘어지고 찢어진 섬유는 폭력과 상처, 인간의 취약함을 말없이 드러냈다. 섬유라는 재료는 단순히 시각적 효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육체적인 제작 과정을 담고 있었다. 그 과정에는 인간이 살아가며 감내해야 하는 노동, 시간, 존재의 리듬이 스며 있어 섬세한 생명력과 역사적 흔적을 강하게 환기했다.


628761972fa6b864998c0dd8c0d97ee4_1768148039_7962.png
ⓒ Musée BourdellePhoto: Han Jisoo 

전시를 나서며, 인간이 서로 얽히고 엮이며 살아가는 방식, 그 안에 존재하는 취약함과 연대의 가능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아바카노비치의 직조는 단순히 시각적 경험을 넘어, 인간 존재의 구조와 삶의 결을 은근하게 전하는 매개가 되었다는 점에서 마음에 남았다.



나는 섬유를 […] 우리 환경에서 가장 큰 신비로 여긴다. 모든 생명체, 식물의 조직과 잎, 
그리고 우리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섬유로부터 만들어진다.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예술 현장의 숨결을 기록하며 언어와 문화 사이의 미묘한 결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현재는 다양한 문화예술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파리의 이야기를 수집해가고 있다.



전체 238 건 - 1 페이지




dc6844e799399dddb82e7941c1448de0_1729312774_3745.jpg
 



게시판 전체검색
다크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