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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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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주리 미술관: 베르트 베유. 아방가르드의 갤러리스트// 미셸 페이장. 모네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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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8일 – 2026년 1월 26일
Musée de l'Orangerie: Berthe Weill. Galeriste d’avant-garde// Michel Paysant. Voir Monet



오랑주리 미술관은 클로드 모네의 대형 연작 「수련」을 위해 설계된 타원형 전시실을 중심으로, 세잔, 르누아르, 마티스,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 근대 미술의 전환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전시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작품 자체보다 ‘어떻게 그 작품이 세상에 나왔는가’에 초점을 둔다. 2023년 전시 「모딜리아니: 한 화가와 그의 미술상」을 시작으로, 화가 개인의 천재성만을 강조하는 대신 미술상, 갤러리, 컬렉터, 전시, 판매 구조가 어떻게 아방가르드를 만들어냈는지를 추적하는 연속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20세기 아방가르드는 우연히 탄생한 것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한 미술상과 네트워크, 시장의 선택이 맞물려 형성되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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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OrangeriePhoto: Han Jisoo 

그 연장선에서 현재 진행중인 「베르트 베유. 아방가르드의 갤러리스트」전시는 역사에서 과소평가되어 온 인물을 전면에 세워 미술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과 구조를 이해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다. 베르트 베유의 기여를 통해 미술사에 기록된 여러 결정적 순간들의 성립 과정을 조명하며, 20세기 전반기 갤러리의 삶과 그 연속성, 그리고 우여곡절을 함께 그려낸다. 회화, 조각, 드로잉, 판화, 주얼리 등 약 100점의 작품은 베르트 베유가 조직했던 전시들과 그 역사적 맥락을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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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OrangeriePhoto: Han Jisoo 


베르트 베유는 자본도 제도적 후원도 없이 신념과 실행력으로 20세기 초 아방가르드를 떠받친 갤러리스트였다. 그녀는 큐비스트와 에콜 드 파리 작가들을 초기부터 발굴·전시·판매하며 시장과 여론이 준비되지 않은 예술을 먼저 선택했고, 보수주의·민족주의·성차별에 맞서 젊은 예술가에게 자리를 만들어냈다. 상업적 실패와 검열, 전쟁과 박해 속에서도 예술가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했다. 베유는 아방가르드의 성립을 현장에서 가능하게 한 핵심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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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OrangeriePhoto: Han Jisoo 

베르트 베유는 1865년 11월 20일, 알자스계 유대인 출신의 소박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헌옷 수집상이었고, 어머니는 재봉 작업장에서 수련을 받은 뒤 가정에 전념했다. 베유는 매우 어린 나이에 사촌인 살바토르 마이어(Salvator Mayer)에게 도제로 맡겨졌는데, 그는 저명한 판화 및 회화 상인이었다. 이 시기에 그녀는 미술 작품 거래를 배우며 파리 예술계의 주요 인물들과 컬렉터들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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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OrangeriePhoto: Han Jisoo 

1896년 마이어가 사망한 뒤, 가족의 지원을 받아 베르트 베유는 피갈(Pigalle) 지역 빅토르-마세(Victor-Massé) 거리 25번지에 골동품과 미술품을 취급하는 상점을 열었다. 이곳은 당시 파리의 밤 문화를 상징하는 중심지였으며, 몽마르트르 자락에 위치해 많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극심한 빈곤 속에서 거주하고 작업하던 곳과 맞닿아 있었다. 1901년 서른여섯 살의 나이로 베르트 베유는 자신의 상점 안뜰의 공간을 개조해 <갤러리 B. 베유(Galerie B. Weill)>를 개관했다. 그녀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으면서 여성이 운영하는 갤러리라는 사실을 희석시켰다. 베르트 베유는 자신의 갤러리에서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처음으로 판매했고, 라울 뒤피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이 시기를 통해 그녀는 발굴자로서의 명성을 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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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OrangeriePhoto: Han Jisoo 

베르트 베유는 세기 초부터 ‘젊은이들에게 자리를(Place aux jeunes)’라는 표어를 내걸고 예술가들을 지원했다. 갤러리를 열기 전부터 피카소의 작품 판매에 기여했으며, 모딜리아니의 경우 1917년 생전 유일한 개인전을 조직했다. 그녀는 마티스를 중심으로 한 귀스타브 모로의 제자들 그룹의 전시를 정기적으로 열며 야수주의의 인정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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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OrangeriePhoto: Han Jisoo 


이후에는 큐비즘과 에콜 드 파리의 예술가들과 함께 새로운 형식의 탄생을 위해, 그리고 보수주의와 외국인 혐오에 맞서 ‘예술을 위한 투쟁’을 벌였다. 여러 난관 속에서도 특정 유파에 속하지 않은 매우 다양한 인물들까지도 전시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성별이나 학파에 대한 편견 없이 여성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1905년부터 1933년까지 정기적으로 에밀리 샤르미(Émilie Charmy)를 비롯해, 자클린 마르발(Jacqueline Marval), 에르민 다비드(Hermine David),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등을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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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OrangeriePhoto: Han Jisoo 


그녀는 제한된 자원 속에서도 동시대 예술가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발견과 경력의 도약에 기여했다. 그녀가 지원한 이들 가운데에는 오늘날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거장들도 있었고, 물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들도 포함되어 있다. 변함없는 열정과 끈기로, 베유는 약 40년 동안 그들의 대변인이자 후원자로 활동했으며, 전쟁과 유대인 박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도 지속했다. 1951년 사망할 때까지, 베르트 베유는 여러 차례 갤러리를 옮기면서 300명 이상의 예술가를 소개했고, 1940년 갤러리가 최종 폐관될 때까지 수백 차례의 전시를 직접 기획하고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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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OrangeriePhoto: Han Jisoo 
 
1933년, 30년에 걸친 활동을 회고한 「Pan ! Dans l’œil…(팡! 눈 속에서…)」을 출간하며 갤러리스트로서의 작업을 남겼다. 당시 미술사는 주로 화가 중심으로 쓰였기 때문에 이런 기록이 거의 없었다. 화가나 비평가가 아니라, 전시를 만들고 작품을 팔며 예술가를 지원했던 사람이 현장에서 겪은 일을 자기 목소리로 솔직하게 담아낸 것이다. 갤러리스트 자신의 시선에서 작품이 어떻게 세상에 소개되고 아방가르드가 성장했는지에 대한 현장 보고서를 작성한 셈이다. 그래서 미술 시장과 전시, 거래의 역할을 내부 시선으로 보여주는 기록이라는 점과, 당시 드물었던 갤러리스트 회고록이라는 독창적 장르의 선구자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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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OrangeriePhoto: Han Jisoo 


베르트 베유는 예술가들의 성장을 함께 이끌어 간 중요한 존재였다. 그녀가 수많은 전시를 열고 예술가들을 꾸준히 지원하며 보여준 태도는 시대적 제약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젊은 예술을 끝까지 신뢰하고 지켜낸 모습에서 더욱 돋보였다. 베유가 발굴하고 보호한 예술가들과 그들의 흔적을 통해 예술사의 흐름을 움직이는 힘이 단순히 개인적 재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수많은 전시와 지원 속에서 보여진 그녀의 꾸준함과 신념이 인상적이었고 그 역할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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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OrangeriePhoto: Han Jisoo 


현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는 베르트 베유 전시와 함께, 미셸 페이장의 「모네를 보다」전시도 진행 중이다. 미셸 페이장은 시각 인식과 과학기술을 예술 언어로 전환하는 개념미술가이자 드로잉 작가이다. 특히, 손이 아닌 시선을 도구로 삼아 보는 행위 자체를 창작 과정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과학 연구소와 미술관을 오가며 아이 트래킹(Eye tracking), 디지털 기술, 장인적 제작을 결합해 예술·디자인·공예·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지속해 왔고 인식의 과정과 사고의 이동에 초점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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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OrangeriePhoto: Han Jisoo 

이번 전시에서, 눈으로 그리기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의 시선 움직임으로 모네의「수련」을 다시 그린다. 거대한 회화를 눈의 궤적으로 해석하는 실험적인 작업으로 작가의 ‘내면의 시네마’를 드로잉, 빛, 오브제로 물질화하며 장인 기술과 첨단 기술을 함께 사용했다.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 만드는 사람, 그리고 예술 자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새롭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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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OrangeriePhoto: Han Jisoo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예술 현장의 숨결을 기록하며 언어와 문화 사이의 미묘한 결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현재는 다양한 문화예술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파리의 이야기를 수집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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