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앤배 갤러리는 일본 교토를 기반으로 활동 중인 배상순 작가의 개인전 《Bloodline》을 오는 11월 8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제1, 2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흑백의 단색 화면과 무수한 선으로 구성된 벨벳 회화, 밧줄 설치 작품, 그리고 드로잉을 비롯해 도자기, 유리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피와 시간, 그리고 생명의 근원을 잇는 선(線)을 통해, 한 여성으로서 겪어온 변화와 흔적들을 ‘선 위의 삶’으로 그려내며 인간 내면의 상처를 자각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배상순, Gordian Knot 7, 116 x 91 cm, Charcoal and ink on canvas, 2012 © 작가, 리앤배 갤러리
배상순, Echoes of Memory 2025-22, 27.5 x 45.5 cm, Gesso on velvet, 2025 © 작가, 리앤배 갤러리
배상순, Chasm of Time 2024-1, 92 x 183 for each(x4), Gesso on velvet, 2024 © 작가, 리앤배 갤러리
배상순, Echoes of Memory 2025-21, 27.5 x 45.5 cm, Gesso on velvet, 2025 © 작가, 리앤배 갤러리
작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어져온 ‘선(線)’의 여정을 그려낸다. 2013년 부산의 바닷가에서 어선의 밧줄을 얻어 먹물로 물들이던 시절부터 시작된 이 여정은 단순한 재료 실험을 넘어, 작가의 삶을 관통하는 시간의 기록이자 드로잉의 확장이다. 짠 바닷물에 다져지고 낡은 밧줄은 자르고, 엮이고, 다시 색으로 물들이며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이 과정은 물질의 변형을 넘어, 한 여성으로서 작가가 경험해온 시간의 흐름과 몸의 변화를 예술적 언어로 승화시킨다. 이번 <Bloodline>전은 한 여성의 몸과 마음의 변화, 관계의 굴곡, 그리고 시간의 무게 속에서 엉키고 풀리며 다시 이어지는 ‘삶의 선’을 이야기한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검은 밧줄들은 핏줄처럼, 혹은 기억의 끈처럼 공간을 가르며 이어지고, 폐경 이후의 시기에서 비롯된 ‘피가 멈춘 자리에서 다시 시작되는 또 다른 흐름’을 상징한다. 더불어 도자기와 유리, 드로잉으로 확장된 작품들은 작가의 생애와 신체, 그리고 여성성의 흔적을 담아내며, 멈춤과 흐름, 단절과 이어짐 사이에서 다시 피어나는 생의 의지를 드러낸다.
작가를 대표하는 벨벳 회화는 ‘선화(線畵)’를 바탕으로 한다. ‘무(無)’에 가까운 검정 벨벳 위에 흰색 젯소를 희석한 물감으로 수없이 많은 선을 반복해 그리고 중첩시키며, 그 위에 희미한 음영과 깊은 울림의 화면을 구축한다. 시간의 축적 속에서 안과 밖을 오가며 뒤섞이는 선들은 인간관계의 깊이와 파장을 드러내며, 작가의 삶에 대한 성찰과 일념을 담아낸다. 묵언과 집중의 시간 속에서 반복된 흰색 선들은 하나의 면으로 응축되고,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검은 여백 속에서는 무한한 심연이 펼쳐진다. 그렇게 탄생한 벨벳 회화는 단순한 평면을 넘어, ‘보이지 않음’의 공간을 탐구하는 회화의 한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작가는 반사를 최소화하고 빛을 거의 완벽히 흡수하는 검정 벨벳을 캔버스 대신 선택했다. 그 위에 극도로 옅지만 단단한 물성을 지닌 흰 젯소를 사용하여 무한히 이어지는 원과 선을 그려나간다. 이러한 행위는 관계와 존재, 시간의 흔적을 구도자의 자세로 되새기며, 인간과 우주의 본질을 탐구하는 수행의 과정이 된다.
배상순 작가는 1971년 전남 화순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원과 교토시립예술대학원, 그리고 영국 Royal College of Art(판화전공)에서 수학했다. 2005년과 2008년 일본 모리미술관 「현대미술의 전망- 새로운 평면의 작가들」에 선정되어 평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다수의 개인전, 단체전, 아트페어에 참가하였다. 서울, 런던, 홍콩, 마이애미, 바젤,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작품을 발표하며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현재 교토를 거점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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