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는 오는 4월 24일부터 6월 14일까지 부산점에서 홍승혜의 개인전 《이동 중(On the Move)》을 개최한다. 지난 2023년 서울점에서의 전시 이후 3년 만에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이자 홍승혜가 부산점에서 처음 선보이는 전시로, 그동안 작가가 천착해온 ‘이동성’의 개념에 주목한 다양한 시기의 작업을 새로운 구성으로 재맥락화하며 작업의 변모 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홍승혜,〈움직이세요〉 2022 animate, garageband 2 min. 51 sec.© 작가, 국제갤러리
홍승혜,〈우주로 간 스누피〉 2019 flash animation, garageband 2 min. 51 sec.© 작가, 국제갤러리
작가는 이번 전시를 “디지털 세계로 진입한 이후 전개해온 기하학적 이미지의 움직임에 관한 보고서”라고 설명한다. 지난 1997년 컴퓨터 화면의 기본 단위인 디지털 픽셀(pixel)을 사용하며 시작된 연작 〈유기적 기하학〉에서 감지되던 환영적 움직임은, 플래시 애니메이션인 〈더 센티멘탈 1〉(2002)을 기점으로 실제적인 시간성과 리듬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이후 작곡 프로그램 개러지밴드(GarageBand)로 만든 사운드에 맞춰 포토샵에서 생성한 인물 픽토그램을 안무한 영상 설치 〈나의 개러지밴드〉(2016), 작가가 연출한 퍼포먼스 〈연습〉(2021), 그리고 2024년에 직접 퍼포머로 참여한 〈사일런트 배틀〉에 이르기까지, 움직임은 픽셀의 운동에서 신체로 확장되며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감각으로 자리해왔다. 컴퓨터의 ‘실행 취소(undo)’ 기능을 통해 화면 안의 도형이 변화하는 과정을 우연히 처음 목격한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서 착안한 움직임은 이후 작가 작업 세계 전반에서 주요한 탐구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전시에서는 작가가 집중적으로 탐구해온 주요 영상 작업들을 한 자리에서 소개한다. 만화 ‘피너츠(Peanuts)’ 속 캐릭터 스누피의 우주 여행을 상상하며 캐릭터의 모습을 단순한 도형의 구성으로 치환한 〈우주로 간 스누피〉(2019)를 비롯해, 빛의 변화에 따라 정지된 조각의 분위기와 감각을 전환시키는 장치로 기능하는 〈불빛〉(2021)이 함께 전시된다. 관객에게 함께 움직이기를 권하는 듯한 〈움직이세요〉(2022)와 2023년 국제갤러리 전시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에서 전시장 공중에 매달린 〈무용수〉(2023) 조각들과 결합해 무도회의 분위기를 연출했던 〈서치라이트〉(2023)가 함께 자리한다. 또한 디지털 시대의 소통 수단인 ‘이모티콘’에서 착안해 인간의 감정을 간결한 도형적 언어로 풀어낸 〈표정 연습〉(2025)이 포함된다. 각각의 영상 작업은 단순한 시각 요소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움직임과 리듬, 반복을 통해 이미지의 의미와 기능을 변주하며 확장한다.
서사와 특수효과를 최소화한 홍승혜의 영상은 특히 간결한 도형들이 느린 호흡으로 움직이는 절제된 형식 안에서 관람자에게 깊은 정서적 울림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특성은 화면 속 시각적 이미지의 움직임을 “음표를 배열하듯 공간에 맞는 형식을 구축”하는 작가의 방법론과도 맞닿아 있다. 스크린이라는 공간 속에 녹아 든 음악적 구조와 리듬의 역할은 언어나 기호를 넘어 감정을 매만질 수 있는 마법과도 같은 힘을 더한다.
한편, 기하학적 이미지의 움직임은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영상에 국한되지 않고, 모니터 속 이미지가 평면 작업을 넘어 가구, 설치 등 물리적 공간으로 확장되는 입체 작업 전반을 아우른다. 이번 전시에서는 환영적 움직임이 느껴지는 평면 작업 〈유기적 기하학〉(2014)과 가변적 조각 작품 〈액자형 부조〉(2026)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관람객이 앉아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벤치〉(2023) 및 〈백스툴〉(2023)과 같은 이동 가능한 가구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이렇듯 전시는 서로 다른 시기의 작업을 매체와 형식, 그리고 방법론을 가로질러 병치함으로써 홍승혜의 작업에서 지속되어온 ‘움직임’의 개념을 다층적으로 드러내며 ‘이동’의 의미까지 획득한다. 〈유기적 기하학〉 속 정지된 이미지에서 나타나는 이동성에 대한 형식적 실험은 영상 작품과 같은 공간에 놓임으로써, 작가가 오랜 시간 탐구해온 이미지, 움직임, 그리고 이동성이라는 요소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확장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액자형 부조〉에 도입된 가변적 요소는 고정된 조형을 넘어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하며, 프레임을 넘어 물리적 공간과 신체의 경험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영상 작업을 중심으로 한 이번 전시는 평면과 입체로, 그리고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넘나들면서 그동안 작가의 작업 세계를 견인해온 움직임의 개념 및 방법론의 변천사를 일괄한다. 특히 디지털 환경 속 움직이는 이미지에 익숙하다 못해 당연해진 오늘날의 관람객에게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컴퓨터 화면 안에서 도형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바로 그 첫 순간에 느꼈을 작가의 환희, 그리고 모니터 안팎을 넘나들어온 여정을 환기시킨다. 이로써 작가 홍승혜는 여전히—그리고 계속해서—‘이동 중’임을 시사한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홍승혜(b. 1959)는 198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6년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97년 사각 픽셀의 구축으로 시작된 작업은 최근 벡터 문법을 도입하면서 보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이미지로 확장되었으며, 이는 평면과 입체, 나아가 애니메이션, 가구, 건축적 요소를 아우르며 역동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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