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경 개인전 《안구선사(眼球禪師)》 개최
국제갤러리, 2026. 3. 19.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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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는 오는 3월 19일부터 5월 10일까지 K1에서 박찬경의 개인전 《안구선사(眼球禪師)》를 개최한다. 국제갤러리에서 9년 만에 선보이는 작가의 전시로, 최근 작업한 회화 20여 점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박찬경은 지난 30여 년 동안 분단과 냉전, 전통과 민간신앙을 하나의 렌즈로 삼아 한국과 동아시아의 근대성을 살펴왔다. 그는 전통을 근대화·서구화의 과정에서 억압과 찬양, 단절과 계승이라는 이분법적 선택지로 보기를 지양하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출몰하는 병적 징후이자 의문, 에너지 혹은 자원 등으로 여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사찰 벽화와 조선 민화를 빌어오고 해석하면서, 민간의 전통 미학에 내재한 그로테스크, 숭고, 판타지, 유머 등을 이끌어낸다. 탱화나 민화, 때로는 만화적 형식을 뒤섞고 간추리며 과장하는 방식은, 흔히 ‘문화유산’이나 ‘전통문화’라는 이름 아래 안온하게 틀 지워진 관념 대신, 작가의 말에 따르면, “졸고 있는 전통의 관념과 이미지들을 깨우고자” 하는 시도이다.
전시 제목과 동명의 작품인 〈안구선사〉(2025)는 한국 사찰에 흔히 그려지는 ‘구지선사(俱胝禪師)’ 이야기를 변형한 것이다. 손가락 하나를 세워 깨우침을 주었다 해서 ‘구지선사’라 불리는 이 중국 당나라의 승려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스승의 동작을 흉내 내는 동자승의 손가락을 잘랐다는 일화로 알려져 있다. 문제의 장면은 대개 갑자기 손가락을 잃고 경악하는 제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처럼 사찰 그림에는 간절한 기원이나 초월의 결기를 담은 표현과 함께 짓궂은 농담 혹은 만화적인 과장도 자주 뒤섞여 나타난다. 작가의 작품 속 동자는 화가 또는 작가 자신을 비유하기도 하며, 항상 무언가를 모방하다가 눈이 뽑히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다소 자학적인 '시각예술가'의 선문답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도를 얻기 위해 자신의 팔을 잘랐다는 혜가의 고사를 그린 〈혜가단비도〉(2026)와 스승에게 화로를 머리에 이고 가 불법(佛法)을 배우고자 하는 결의를 보인 혜통의 이야기를 해석한 〈혜통선사〉(2025) 역시 불가에서 전해오는 에피소드를 일종의 ‘선불교 그로테스크 SF’로 변형한 작업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고란사〉(2024), 〈낙하〉(2025), 〈백양사〉(2025) 등의 작품에서는 작가가 국내 여러 사찰을 다니며 받은 인상을 담았다.
한편 〈족자〉 연작은 캔버스와 족자 사이의 언어 게임으로, 동서양의 문화적 경계에서 연행하는 외줄타기와도 같다. 〈괴석 1〉(2025), 〈괴석들〉(2025)과 〈프로젝션〉 연작은 기암괴석 그림에 배어 있는 현학(玄學, 노장사상에서 말하는 우주의 오묘한 이치)에 대해 묻는 일종의 ‘그림 퀴즈’로, 작가는 옛 괴석도가 이미 ‘인류 없는 우주’를 상상했다는 점에서 인간 중심의 사유에서 벗어나려는 작금의 노력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안구선사(眼球禪師)》에서 작가는 기존에 중점적으로 다뤄온 영상과 사진이라는 매체에서 회화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과거 작업에도 불교 벽화, 민화 등 회화를 참조한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했으며, 전시 기획과 글을 통해서도 작가는 그림에 대한 의견을 꾸준히 피력해왔다. 박찬경은 이번 전시를 통해 회화에 대한 최근의 생각을 드러내는데, 특히 개인의 독창성이나 개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공동체에 반복되고 전승되는 과정에서 개입된 익명의 창조성에 주목한다. 민화와 산수화가 그림 속에 또 다른 그림을 삽입하고 문자와 이미지를 상호 참조하며 기존의 도상을 흉내 내면서 오랜 시간 스스로 갱신해 왔듯, 이번 출품작 전반에는 이러한 ‘집단적 독창성’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다.
그림에 대한 작가의 또 다른 생각은 하루에 한 개씩 돌을 그리고 날짜를 붙인 그림 〈헛수고〉 연작에서 드러난다. 돌탑을 쌓는 소박한 기복 행위가 실질적인 기능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내밀하고 소중한 의미를 갖듯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 역시 ‘의미 있는 헛수고’, 또는 ‘헛수고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제안이다. 현대 사회 곳곳에서 스마트폰과 모니터를 응시하는 ‘안구들’이 몸과 분리된 채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면, ‘의미 있는 헛수고’는 ‘신경조직의 무의미한 중노동’과 대비되는 수행적 이미지에 가깝다.
한편 박찬경(b.1965)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대학(CalArts)에서 사진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 작가로 선정됐으며,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아뜰리에 에르메스, 국제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아이치 트리엔날레, 타이베이 비엔날레 등 국제 전시에 참여했으며,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귀신 간첩 할머니》(2014)의 예술감독을 맡는 등 기획자로서도 활동해왔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런던 테이트 모던, 파리 카디스트(KADIST), 홍콩 M+ 등 국내외 주요 미술 기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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