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데우스 로팍 서울은 한 빙(Han Bing), 메간 루니(Megan Rooney), 조안 스나이더(Joan Snyder)의 작품을 한데 모은 그룹전 《마음의 눈(That Inward Eye)》을 개최한다. 국내에서 세 작가의 작품을 함께 선보이는 것은 처음으로, 총 16여 점이 전시된다. 본 전시는 회화에 대한 이들만의 독특한 접근 방식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교차점 및 차이점을 탐구한다. 서로 다른 문화적, 물질적, 지리적 배경 속에서 활동하는 세 작가는 화면을 단순히 안료를 입히는 표면으로 국한하지 않고, 그 심연을 파고들거나 매체에 정면으로 맞서며 치열하게 교감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이들에게 화면은 단순한 테두리나 지지체를 넘어, 능동적으로 조율하고 넘나들어야 하는 하나의 경계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회화는 색채와 몸짓, 재료뿐만 아니라 시간과 기억, 그리고 내밀한 감정까지도 온전히 품어내는 일종의 그릇이 된다.
한빙 원자 2 2026 리넨에 아크릴릭, 유채 그리고 오일 파스텔 143 × 177.8 cm
메간 루니 골짜기와 언덕 너머 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유채, 파스텔 그리고 오일 스틱 199.5 × 150.2 cm
조안 스나이더 왜냐하면 2012 리넨에 유채, 연필, 파피에 마셰 그리고 허브 121.9 × 152.4 cm
1940년 뉴저지에서 태어난 조안 스나이더는 미국 현대미술사에서 회화의 신체적 언어를 독보적으로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스나이더의 작품들은 작가의 자전적 삶과 자연 세계, 그리고 회화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밀한 상호작용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회화는 화면의 고정된 상태를 거부하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는 물을 묘사한 형상 그 자체에서 오는 흐름의 이미지와, 끈적하게 맺히고 흐르는 물감 그 자체의 물질적인 유동성이 결합되어 나타난다. 〈바다의 언어〉(1999)를 보면, 유리 구슬이 박힌 청록색 바다 위로 노란색 격자가 그려져 있다. 이 격자 무늬는 미술사학자이자 비평가인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가 ‘모더니즘의 상징’이라 정의했던 20세기 미술의 지배적이고 견고한 구조를 대변하지만, 스나이더의 화면 위에서는 물감이라는 물질 자체가 뿜어내는 생동감 앞에 무력하게 해체된다. 정갈하게 그어진 격자 선과 명확한 테두리는 물감이 뚝뚝 떨어지고 번진 흔적, 그리고 얼룩 속으로 녹아내리며 형체를 잃는다. 이를 통해 스나이더는 바다의 언어가 물감의 속성이나 여성적 감수성처럼 결코 단순한 기하학적 구조 안에 규격화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큐레이터이자 미술사학자인 제니 소킨(Jenni Sorkin)이 평했듯, 스나이더의 작업 전반에서 격자는 메트로놈처럼 정밀하게 화면의 템포를 잡아주는 기준점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이를 위반하고 넘어서고자 하는 토대가 된다.
스나이더의 작품 대부분은 젖음과 마름, 부드러움과 단단함, 밝음과 어두움과 같은 이분법적인 대립 요소들을 작품 안에서 증폭시키거나 해체한다. 〈왜냐하면〉(2012)의 표면은 흘러내리는 자국과 임파스토 기법이 적용된 두터운 질감의 물감이 어우러지며 역동적인 장면을 만든다. 또한, 〈스튜디오 노트〉(2025)에서는 천 조각과 각종 상징, 손자국과 손글씨 등 개인적인 흔적들 아래로 나무로 쌓아올린 타원형의 연못 형상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연못은 꽃, 토템, 신체 등과 같이 스나이더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모티프이다. 이는 작가의 삶과 작업 환경이 반영된 일기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한편, 그 형태론적 구조는 회화의 본질을 대변하는데, 이 작품에서 반짝이는 연못의 표면은 거울처럼 세상을 반사하는 동시에 그 내부 깊이 심연을 품고 있는 회화적 공간 그 자체가 된다.
메간 루니에게 회화란 안료를 쌓아 올리는 행위임과 동시에 표면 아래를 다시 파헤쳐가는 과정이며, 캔버스와 작가의 신체가 격렬하게 부딪히며 형상을 끌어내거나 길들여가는 물리적 교감의 장이다. 2025년 에스파스 루이비통 베이징에서 열린 《Joan Mitchell / Megan Rooney: PAINTING FROM NATURE》에서 조안 미첼의 작품과 함께 소개된 바 있는 그의 작업은, 본능적으로 쌓아올린 물감과 파스텔, 오일 스틱의 층을 전동 샌딩기로 다시 갈아내는 순환적 공정을 통해 전개된다. 이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은 작가의 내밀한 풍경은 물론 주변 환경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머금으며 하나의 타임캡슐이 된다.
루니는 단순히 캔버스의 표면적인 처리에 머물지 않고, 붓과 전동 샌딩기를 번갈아 사용하며 화면 속으로 직접 파고든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스스로가 화면 위를 배회하며 착륙할 곳을 찾고, 내려앉았다가 다시 떠오르는 비행 상태에 있다고 상상한다. 표면에 정보가 쌓이기 시작할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한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지속적이면서도 대립적인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이 사용하는 매체의 조건과 맞서며, 화면의 평면성과 필치가 지닌 견고함을 탐구한다. 작품의 제목은 대개 제작 최종 단계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요소들에서 기인하거나, 때로는 시 구절 또는 변하는 계절에 대한 작가의 관찰에서 비롯된다. 이는 수개월에 걸쳐 전개되는 작가와 각각의 회화 사이의 내밀한 대화를 방증하며, 화면 안팎으로 공명하는 대화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몸짓처럼 활기찬 붓질 사이를 가로지른다.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 제목의 대부분은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시 〈수선화(I Wandered Lonely as a Cloud)〉(1807)에서 인용되었으며, 상상력을 ‘마음의 눈(that inward eye)’이라 일컬은 시인의 문학적 표현은 이번 전시의 제목이 되었다.
적층과 소거의 반복은 한 빙의 작업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의 작품은 2024년 중국 국립 미술관 전시에 소개되며 주목받았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상하이를 거쳐 파리로 이주한 작가는 도시를 가로지르며 무의식적으로 수집한 파편과 질감들을 작업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작가는 특히 지하철역이나 거리 곳곳에 붙은 포스터와 광고지에 매료되어, 종이들이 지층처럼 겹겹이 쌓이거나 찢겨 나가며 예기치 못한 시각적 구성을 드러내는 방식에 주목한다. 미술사학자 도리스 폰 드라텐(Doris von Drathen)은 한 빙이 주목하는 지점이 이미지 사이의 '틈'에 있다고 분석한다. 작가의 시선은 단순히 찢어내는 행위나 이미지의 파편이 아니라, 형상이 나타나고 사라짐을 반복하는 그 역동적인 순환의 과정에 머문다. 그의 회화에서 이미지는 끊임없이 덧칠되고 다시 긁혀져 형성된 거칠고 중첩된 테두리들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때때로 익숙한 형상들이 즉흥적이고 오류(glitch)와 같은 붓질에 의해 해체되었다가, 다시 하나의 완결된 구성으로 수렴되기도 한다. 이로써 화면은 단일한 테두리가 아닌 다층적인 경계의 집합체가 된다.
회화와 함께 전시되는 종이 작업들은 안료를 한 표면에서 다른 표면으로 옮기는 전사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으며, 작가는 이를 판화의 제작 방식에 비유한다. 작가는 종이를 떼어내어 결과물이 비로소 실체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무엇이 탄생할지 알 수 없는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섬세한 우연성에 집중한다. 이 작업들에서는 선명하게 튀어 오른 안료의 흔적들이 신문 지면과 만나며 서로 다른 시각적 경계가 교차된다. 인쇄된 정보를 부분적으로 지워버리는 동시에 예상치 못한 구성을 창조하는, 마치 도시 환경에서 발견되는 우연한 흔적들처럼 한 빙은 두 개의 시각적 경계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미학적 가능성을 탐구한다.
세 작가는 각자만의 고유한 시각적 언어로 적층과 매몰, 그리고 소거라는 물리적 작업 과정을 통해 회화의 표면을 구성하는 구조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이어간다. 궁극적으로 이들은 추상과 구상, 관찰과 기억, 고체와 액체, 그리고 과거와 현재라는 서로 다른 상태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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