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투아르 미술관: 장-샤를 드 카스텔바작. 상상력에게 권력을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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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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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투아르 미술관: 장-샤를 드 카스텔바작. 상상력에게 권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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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2일 - 2026년 8월 23일
Les Abattoirs: Jean-Charles de Castelbajac. L’imagination au pouvoir

아바투아르 미술관은 2000년 개관한 툴루즈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기관으로, 19세기 옛 도축장 건물을 개조해 탄생한 독특한 문화 공간이다. 툴루즈 시립 근현대미술관과 옥시타니(Occitanie) 지역 현대미술 컬렉션(FRAC)이 결합해 설립된 이곳은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근현대미술 소장품을 기반으로 다양한 기획전과 작가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전시장뿐 아니라 도서관, 교육 공간, 강당, 서점, 레스토랑 등을 갖춘 복합 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지역 예술 생태계와 긴밀히 연결된 창작 지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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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s Abattoirs, Photo: Han Jisoo 

현재 아바투아르 미술관에서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다방면의 예술가인 장샤를 드 카스텔바작(Jean-Charles de Castelbajac, 1949년생)을 조명하는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다. 의상, 디자인 오브제, 드로잉, 사진 등 약 300점의 작품을 통해 196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그의 창작 여정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주제별 구성과 몰입형 전시 연출, 미술관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설치 작품을 통해 카스텔바작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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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s Abattoirs, Photo: Han Jisoo  


카스텔바작은 패션을 중심으로 예술, 음악, 디자인, 역사, 종교, 대중문화를 연결하며 자신만의 표현 언어를 구축해 온 프랑스의 선구적 창작자다. 1960년대 말부터 일상의 소재와 이미지를 새롭게 재해석하며 업사이클링과 소재 실험을 선도했고, 1978년 자신의 이름을 건 패션 하우스를 설립했다. 그에게 의복은 단순한 착용물이 아니라 기억과 이야기를 담는 예술적 매체이자 신체를 보호하는 하나의 조형물이었다. 유년기의 기억, 팝문화의 상징, 역사적 요소를 결합한 그의 작업은 패션의 영역을 확장하며 예술과 삶이 만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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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s Abattoirs, Photo: Han Jisoo  


카스텔바작의 창작 세계는 일상의 소재를 새로운 의미로 전환하는 데서 출발한다. 1968년 기숙학교 담요로 만든 코트를 선보인 그는 1968년 5월 혁명과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의 영향 속에서 기존 사물과 이미지를 재해석하는 전용(détournement)의 방식을 발전시켰다. 걸레, 샤워 커튼, 골판지 등 ‘저급한 재료’를 활용한 그의 작업은 버려진 것과 평범한 것을 예술적 표현으로 변환하는 시도였으며, 이는 흙·천·폐기물 등 비전통적 재료를 사용해 예술의 경계를 확장한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현실의 사물과 이미지를 작품으로 끌어들인 누보 레알리슴(Nouveau Réalisme) 등 현대미술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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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실험은 이후 업사이클링, 축적, 콜라주, 소재의 혼합과 결합으로 확장되며 패션을 하나의 예술적 매체로 발전시켰다. 의상, 드로잉, 사진, 디자인 오브제 등 다양한 형식을 넘나드는 그의 작업은 재료와 아이디어를 새롭게 변환하며, 예술·역사·사회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는 총체예술(total art)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카스텔바작은 일상의 사물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며 패션과 현대미술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 선구자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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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s Abattoirs, Photo: Han Jisoo  


카스텔바작에게 의복은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신체를 보호하는 기능적 공간이자 예술적 표현이다. 그는 1970년대부터 판초, 아기용 코트, 생존 담요와 침낭에서 착안한 의상 등 실용성과 보호 기능을 결합한 디자인을 선보였으며, 스포츠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이러한 철학을 발전시켰다. 또한 재활용 소재와 오버사이즈 실루엣, 강렬한 색채와 패턴을 활용해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했다. 특히 1980년대부터는 위장무늬를 식기와 가구, 자동차까지 확장해 화려한 색감으로 재해석하며, 원래 몸을 숨기기 위한 위장을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는 시각적 상징으로 전환하는 독창적인 작업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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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s Abattoirs, Photo: Han Jisoo  


카스텔바작은 “시 속에서 잠들고 싶다”는 욕망에 이끌려 1981년부터 자신의 의상에 글을 입히기 시작했다. 그 첫 작품은 예술가 로베르 말라발(Robert Malaval)의 동명 시에서 영감을 받은 첫 번째 시적 드레스 「유령(Le Fantôme)」이었다. 이 작업을 통해 그는 미니멀리즘 시기를 벗어나 새로운 창작 방향으로 나아갔다. 문학과 시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출발한 텍스트들은 그가 직접 그리거나 직물 위에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한 것이다. 일부는 그 자신의 글이며, 일부는 유명 작가들의 문장에서 가져왔다. 장 콕토(Jean Cocteau), 제라르 드 네르발(Gérard de Nerval),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등의 문학적 언어가 그의 의상 속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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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s Abattoirs, Photo: Han Jisoo  


카스텔바작은 친구였던 예술가 아르망의 '축적(Accumulations)' 개념에서 영감을 받아 장갑, 양말, 봉제인형 등 일상의 사물을 반복적으로 쌓아 의복을 만드는 독창적인 작업을 선보였다. 이러한 작품은 소비사회를 반영하는 동시에 평범한 물건에 새로운 예술적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모피 산업을 비판하며 탄생한 「곰인형 코트」는 그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으며, 레이디 가가(Lady Gaga)와 바네사 파라디(Vanessa Paradis) 등이 착용하며 널리 알려졌다. 이 밖에도 「파스타 코트(Manteaux-pâtes)」처럼 음식과 생활 속 소재를 패션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은 유머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패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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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s Abattoirs, Photo: Han Jisoo 


카스텔바작의 패션은 시대를 초월한 동시에 역사와 대중문화의 다양한 상징을 품고 있다. 그는 중세의 이미지부터 팝아트적 요소,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물과 캐릭터까지 폭넓은 소재를 의상에 담아내며, 익숙한 이미지를 새로운 시각 언어로 재해석했다. 강렬한 색채와 상징적인 그래픽을 활용한 그의 작업은 패션을 단순한 의복이 아닌 문화적 기억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로 확장했으며, 1980년대에는 팝 컬처 이미지를 니트와 의상에 접목하며 패션과 대중문화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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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s Abattoirs, Photo: Han Jisoo  


카스텔바작의 창작은 하나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형태로 확장되어 왔듯, 왼손잡이였던 그는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오른손으로 오리고 조합하는 행위를 통해 현실의 조각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기도 했다. 그의 콜라주는 단순히 이미지를 붙이는 기법이 아니라, 흩어진 기억과 사물, 색채를 다시 연결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창작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탐구가 대형 드로잉과 콜라주 작업으로 확장되었으며, 패션을 넘어 가구와 디자인 오브제 등 다양한 영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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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s Abattoirs, Photo: Han Jisoo 


장 콕토의 표현을 빌리자면, 카스텔바작은 “모든 분야를 다루는 사람(touche-à-tout)”이었다. 그는 예술, 패션, 디자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협업과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조형 세계를 확장해왔다. 회화적 요소를 담은 의상, 사진 프로젝트, 가구와 오브제 디자인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그의 작업은 패션을 하나의 종합적인 예술 표현으로 발전시켰다. 이번 전시는 카스텔바작이 평생 추구해 온 ‘예술과 삶의 결합’이라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는 버려진 소재와 일상의 이미지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색채와 상상력을 통해 평범한 것들을 특별한 존재로 변화시켰다. 그의 세계는 예술이 전시장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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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s Abattoirs, Photo: Han Jisoo  


한편 아바투아르 미술관에서는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생체모방, 예술과 과학 사이(À l'écoute du vivant: Biomimétisme, entre arts et sciences)》 전시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아바투아르 미술관과 과학문화센터 케 데 사부아르(Quai des Savoirs)가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생명체의 진화와 자연의 원리를 예술과 과학의 시각에서 탐구하며, 생체모방(Biomimicry)을 주제로 자연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를 조명한다. 세 명의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통해 예술과 과학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과정을 보여주며, 지속가능성과 생태적 공존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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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s Abattoirs, Photo: Han Jisoo  


이와 함께 오시타니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메자닌 쉬드상(Prix Mezzanine Sud)》 전시도 진행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오시타니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40세 이하 작가들의 창작을 지원하며, 매년 선정된 두 명의 작가에게 신작 제작의 기회를 제공한다. 2026년 수상 작가인 엘사 브레스(Elsa Brès)와 다미앙 프라뇽(Damien Fragnon)은 각각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해 지역의 보이지 않는 층위와 숨겨진 이야기를 탐구한다. 엘사 브레스는 세벤 지역의 지형 속 틈과 흔적을 따라가며 실제와 허구가 결합된 공동체의 서사를 영상으로 풀어내고, 다미앙 프라뇽은 오시타니 지역에서 채집한 암석을 활용해 지질학적 형성과 생명의 순환을 연상시키는 유기적 조각 설치를 선보인다. 두 작가는 지하와 자연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통해 인간과 환경,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전시 공간에서 대형 설치와 실험적 작업까지 선보이며, 지역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조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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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s Abattoirs, Photo: Han Jisoo  


마지막으로 《조합: 사물을 돌보는 일(Assemblages. Prendre soin des choses)》 전시도 진행되고 있다. 아바투아르 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버려진 사물과 일상의 재료를 결합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조합(Assemblage)' 기법을 조명한다. 피카소와 브라크를 비롯한 현대미술의 선구자부터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 일본의 보로(Boro) 직물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사물을 보존하고 수리하며 다시 사용하는 행위의 예술적·사회적 가치를 탐구하고, 지속가능성과 순환의 의미를 새롭게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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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s Abattoirs, Photo: Han Jisoo  


아바투아르 미술관은 독특한 건축적 분위기와 현대미술에 대한 폭넓은 시선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카스텔바작 전시뿐 아니라 생명과 과학, 현대 창작, 지역 예술가를 조명하는 다양한 전시가 함께 진행되고 있어, 예술의 여러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다. 과거의 산업 공간이었던 건축물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전시 환경 또한 인상적이다. 툴루즈를 방문한다면 새로운 문화 경험을 위해 한 번쯤 들러볼 만한 장소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예술 현장의 숨결을 기록하며 언어와 문화 사이의 미묘한 결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현재는 다양한 문화예술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파리의 이야기를 수집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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