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뇌프 동굴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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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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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뇌프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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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5일 - 6월 28일
La Caverne du Pont Neuf


'새로운 다리'를 뜻하는 퐁뇌프(Pont Neuf)는 이름과 달리 현재 파리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다리다. 수 세기에 걸쳐 파리의 역사를 지켜본 이 상징적인 다리는 올여름 프랑스 아티스트 JR의 손을 거쳐 거대한 동굴로 탈바꿈했다. JR은 6월 15일부터 28일까지 대형 공공예술 프로젝트 《퐁네프 동굴 (La Caverne du Pont Neuf)》를 선보이며 익숙한 도시 풍경을 낯선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번 프로젝트는 당초 6월 6일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개막을 앞두고 강풍과 폭우로 인해 설치 구조물 일부가 크게 손상되면서 일정이 연기됐다. 긴급 복구 작업을 마친 뒤 6월 15일 공식 개막했으며 관람은 무료로 진행된다. 시민과 관광객들은 하루 24시간 작품 내부를 직접 걸으며 이 특별한 공간을 체험할 수 있다. 




거대한 암석 구조물이 다리를 감싸며 마치 수천 년 전 자연이 빚어낸 동굴 속으로 들어서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길이 120m, 폭 20m, 높이 최대 18m에 이르는 이 설치작품은 관람객이 직접 내부를 걸어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낮에는 세느강 위에 솟은 거대한 바위산처럼 보이고, 밤에는 조명과 함께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작품의 사운드 디자인은 프랑스 전자음악 그룹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멤버였던 토마 방갈테르(Thomas Bangalter)가 맡아 공간에 몰입감을 더했다.


 

퐁네프 동굴 내부


JR은 작품을 통해 퐁뇌프를 구성하는 돌의 기원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는 다리 건설에 사용된 뤼테시아 석회암(calcaire lutétien), 이른바 '파리의 돌(Pierre de Paris)'이 채굴되던 채석장에서 영감을 얻었다. 실제로 퐁뇌프를 비롯한 파리의 수많은 역사적 건축물은 이 석회암으로 지어졌다. 프랑스 언론은 이번 작품을 소개하며 "Le pont redevient carrière(다리가 다시 채석장이 된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건축물로 존재하기 이전, 돌이 태어났던 원초적 공간의 기억을 예술적으로 되살린다는 의미에 가깝다. JR은 도시의 상징을 동굴로 변모시킴으로써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던 역사와 재료의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퐁네프 지하철 역 광고

이번 프로젝트는 또 다른 의미를 품고 있다. 바로 1985년 크리스토(Christo)와 잔 클로드(Jeanne-Claude)가 선보인 전설적인 공공예술 작품 《퐁뇌프 포장(The Pont-Neuf Wrapped)》에 대한 헌사다. 당시 두 예술가는 퐁뇌프 전체를 황금빛 천으로 감싸며 세계 미술사에 남을 장면을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결과적으로 수백만 명의 관람객이 찾으며 현대 공공미술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2025년은 이 프로젝트의 40주년이 되는 해였고, JR은 그 유산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해석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작업이 같은 장소를 다루면서도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가 건축물을 가림으로써 그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면, JR은 퐁뇌프를 거대한 동굴로 변모시켜 다리의 형태와 공간 자체를 새롭게 경험하게 한다. 


 


이번 JR의 《퐁네프 동굴》을 보며 자연스럽게 2020년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크리스토와 잔-클로드, 파리! (Christo et Jeanne-Claude, Paris !)》 전시가 떠올랐다. 크리스토가 세상을 떠난 직후 개최된 이 전시는 두 예술가가 파리에서 활동했던 시기와 《퐁뇌프 포장》(1975~1985)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조명하는 동시에, 이듬해 실현을 앞두고 있던 《개선문 포장 (L'Arc de Triomphe, Wrapped)》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당시 전시장에서 도면과 기록으로만 마주했던 계획은 2021년 실제 개선문 랩핑으로 구현되었고, 5년이 지난 지금 JR의 퐁네프는 다시 한번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가 남긴 유산을 현재의 파리로 소환하고 있다. 


 

 

2020년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 파리》!》 전시에 소개된 작품 자료


1962년 처음 구상된 《개선문 포장》은 크리스토와 잔-클로드의 마지막 꿈이었다. 잔-클로드(1935-2009)와 크리스토(1935-2020)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인 2021년, 두 사람이 생전에 남긴 치밀한 설계와 기록을 바탕으로 프로젝트는 마침내 실현됐다. 은청색 직물과 붉은 로프로 개선문 전체를 감싼 설치는 단 16일 동안만 공개됐지만, 수십 년에 걸친 구상과 준비의 시간을 압축해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는 두 작가의 예술이 완성된 결과물뿐 아니라 오랜 협상과 설계, 실행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하나의 작품으로 바라보는 철학을 집약한 상징적인 사후 프로젝트로 남았다. 


 

2020년 퐁피두 센터 전시에서 소개된 《개선문 포장》 프로젝트 자료(왼쪽)와 2021년 실제로 구현된 《개선문 포장》 현장(오른쪽)


2021년 당시 개선문 랩핑 프로젝트는 천에 감싸졌음에도 오히려 그 존재감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고, 익숙한 도시 공간이 완전히 새로운 장소로 전복되는 강렬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반면 이번 퐁네프 동굴은 분명 인상적이고 대담한 시도임에도,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가 선사했던 압도적인 경이로움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다. 퐁뇌프를 새로운 풍경으로 변모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공간 자체를 완전히 낯설게 만들었던 그들의 급진적인 예술적 경험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JR은 파리의 가장 오래된 다리를 단순한 역사 유산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예술 공간으로 다시 살아나게 했다. 수백 년 동안 도시를 연결해 온 다리는 잠시 동굴이 되었고, 시민들은 그 안을 걸으며 익숙한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공공예술이 도시에서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던 장소를 다시 바라보게 하고, 그 안에 스며 있는 시간과 기억을 되살린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예술 현장의 숨결을 기록하며 언어와 문화 사이의 미묘한 결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현재는 다양한 문화예술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파리의 이야기를 수집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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