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프로젝트(이하 UBP)는 2025년 10월 23일부터 11월 23일까지 뉴스프링프로젝트에서 《UNBOXING PROJECT: Reading (읽기)》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세대를 아우르는 한국 동시대 미술 작가 21인이 UBP의 커미션을 통해 제작한 신작 21점을 선보인다.
김아라, <무제-정(正) (Untitled-Jeong)>, 2025, pigment on canvas,
41 x 32 cm (each), diptych, 43.5h x 33.5 x 10 cm (box) ©작가, 뉴스프링프로젝트
김지영, <잠시 (Briefly)>, 2025, oil pastel, acrylic on canvas,
41 x 32 cm (each), diptych, 43.5h x 34 x 10.5 cm (box) ©작가, 뉴스프링프로젝트
김홍석, <I think this text is a picture 나는 이 글이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2002, reproduced 2025,
pencil on gesso, coated by mat vanish, 41 x 32 cm (each),
diptych, 43.5h x 33.5 x 10 cm (box) ©작가, 뉴스프링프로젝트
2022년 시작된 UBP는 작은 작품이 지닌 커다란 가능성을 탐구해온 전시 프로젝트이다. 압도적 크기의 작품이나 스펙터클이 주는 감탄보다 작은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마음을 움직이는(動) 감동과 울림에 주목하며 매회 새로운 주제로 작은 박스 크기의 작품을 선보여왔다. 각 주제를 반영하는 제한된 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작가의 스튜디오로부터 이동해 전시장에서 언박싱되고 이후 소장가에게 전달된다.
여섯 번째 전시인 《읽기》는 미술사적으로 회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문자를 주제로, 문자와 이미지, 독해와 해석 사이의 경계를 탐색한다. 문자는 세상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하며 의사소통의 도구로 기능하지만, 예술작품 속 문자는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을 넘어 다층적 의미를 담는 요소로 변형된다. 이번 전시는 문자를 독해하는 ‘읽기’와 예술작품을 ‘읽는’ 행위를 교차시켜 예술 해석의 다채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참여 작가들에게는 두 개의 캔버스를 경첩으로 연결한 이면화(diptych) 구조의 틀이 제공되었다. 이는 마치 책처럼 펼쳐지고 닫히며 ‘읽기’의 의미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유도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또한 관객에게는 회화와 책이라는 이중적 지각이 발생하는 지점에서 ‘읽기’라는 행위를 낯설면서도 새롭게 경험하게 한다.
참여 작가들은 각자의 고유한 방법론을 통해 문자와 이미지의 관계를 다각도로 탐구한다. 김아라는 전통 건축의 정(井)자 구조와 훈민정음의 문자 형상을 회화적 도형으로 재구성하며 언어와 구조의 근원적 질서를 되묻고, 유승호는 문자와 점묘적 이미지가 겹쳐지는 화면 속에서 비선형적으로 읽히는 ‘하이퍼텍스트’ 구조를 제시해 글과 그림의 해체와 재조합을 탐구한다. 이순주는 두 개의 원과 경첩이 만들어내는 ‘응’의 형상을 통해 언어가 추상적 조형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실험하고, 한재열은 기호의 이면에 있는 사회적 사건을 소환하며 ‘읽기’는 언제나 불완전한 인식에 머문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또한, 김지영은 거친 파도 위에 겹쳐진 ‘잠시’라는 단어를 통해 망각된 비극을 언어로 호출하며 이미지와 텍스트가 빚어내는 긴장을 직시하게 하고, 김홍석은 ‘나는 이 글이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문장과 이를 응시하는 두 인물을 화면에 배치해 ‘읽기’와 ‘보기’의 전환을 실험하며 언어의 지시적 기능을 재고하게 한다. 노은주는 아기의 옹알이 같은 ‘말 이전의 말’을 그래픽 악보처럼 옮겨 언어가 태동하는 감각적 순간을 회화로 번역한다.
한편, 로와정은 색실을 엮어 만든 추상적 구조가 ‘we are on the same page’라는 문장에서 비롯됨을 캔버스 뒷면에서 드러내며 관계의 다양한 작동 원리를 시각화하고, 신민은 이미지와 문장을 엮은 신작을 통해 마치 작가의 사적 스크랩북이자 오브제처럼 구성된 장면을 보이며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 속 지워진 존재들의 자취를 드러낸다. 이처럼 참여 작가들은 문자와 이미지를 단순히 병치하거나 혼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읽기’라는 행위 자체를 확장된 차원에서 질문한다.
《읽기》는 문자와 이미지를 단순한 병치하거나 혼합하는 것을 넘어 두 요소의 관계를 재구성하며 ‘읽기’의 개념과 행위를 확장된 차원에서 질문한다. 작품 속 문자와 이미지는 서로 충돌하거나 교차하며 단일한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긴장과 불일치를 만들어내고, 관객을 독해와 해석, 기록과 상상 사이를 넘나드는 사유의 장으로 이끈다. 이번 전시는 문자와 이미지를 통해 예술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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